‘퀵후크’ 줄이고 번트 대신 강공… ‘용’ 태운 독수리, 구름 위 산책

입력 2018-04-17 06:52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오른쪽)은 올 시즌 희생번트를 줄이면서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도루를 권장하는 등 신바람나는 공격야구를 선보이고 있어 화제다. 한 감독이 지난달 25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양성우와 주먹을 맞부딪치며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선수들 능동적으로 경기 운영… 덕아웃에서는 질책 대신 칭찬

리그에서 가장 많은 희생번트를 대는 팀이었지만 올 시즌엔 1개뿐이다.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얌전한 주자들이었는데, 올해엔 너도나도 다음 베이스를 노린다. 70개만 던져도 강판되던 선발 투수들은 올 시즌 웬만한 위기에도 덕아웃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

작전을 줄이고 선수에게 맡기는 야구, 결과가 나빠도 격려하는 야구. 올 시즌 달라진 한화 이글스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한화는 4월마다 고전하던 예년과 달리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3위에 랭크돼 있다.

한화의 확연한 변화는 승부처를 선수에게 맡기는 장면에서 엿보인다. 16일 야구 통계사이트인 스탯티즈에 따르면 올 시즌 한화의 희생번트는 단 1개로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적다. 한화는 2015년부터 3년간 희생번트 개수에서 1위를 2차례, 2위를 1차례 기록해 왔다.

사인이 없으면 움직일 생각이 없던 주자들은 능동적으로 변했다. 한화는 올 시즌 팀 도루(15개)가 리그 3위다. 주루사와 도루실패(8개)도 많지만, 덕아웃에서는 질책보다 칭찬을 보낸다. “소신껏, 공격적으로 달리라”는 것이 주문이다. 준족인 이용규(도루 5개), 제라드 호잉(4개)뿐 아니라 이성열(3개)과 최재훈(1개)도 뛰기 시작했다.

선발투수의 평균 투구수도 의미 있는 변화로 꼽힌다. 한화의 선발들은 2015년엔 경기마다 80.35구, 2016년엔 73.82구를 던진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실점이 적더라도 위기 상황이 닥치면 3∼4회에도 선발을 내리는 ‘퀵후크’가 지난해까지 한화의 특색이었다. 그런 한화는 올 시즌 선발들에게 평균 91.44구를 던지게 한다.

이는 모두 한용덕 신임 감독이 취임하며 공언했던 ‘큰 야구’다. 한 감독은 개막을 앞둔 시점 “매우 중요할 때만 작전을 내고, 번트보다는 강공 위주로 타자에게 맡기는 야구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투수진 운용에 대해서는 “퀵후크를 하지 않겠다. 멀리 보고 길게 가겠다”고 했다. 그는 훈련량과 팀 분위기도 바꿨다. “훈련을 많이 해서 성적이 나왔다면 그 패턴을 따르겠지만, 훈련을 많이 해도 성적이 나빴었다”는 것이 그가 든 이유다.

이러한 공언 때까지만 해도 야구계는 ‘초보 감독’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었다. 한화 팬들 사이에서 “천하의 김응용 김성근이 만져도, 돈을 쏟아부어도 안 되는 팀”이라는 자조가 있었다. 하지만 한화의 ‘달라지겠다’는 공언은 개막 뒤 그라운드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10승까지 단 18경기가 걸린 것은 신인 류현진이 돌풍을 일으켰던 2006년 이후 처음이다.

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김태균이 빠진 중심타선에서 호잉과 송광민이 조화를 이뤘고, 선발투수들이 투구수를 채워주며 불펜의 부담이 덜어졌다”고 평가했다. 분수령은 리그 1위 두산 베어스와의 주중 3연전이다. 17일부터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릴 한화와 두산의 3연전에서 팬들은 한화의 초반 돌풍이 그저 우연인지 아닌지 확인하게 된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