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롤러코스터 같다. 몸을 싣는 순간 거침없이 질주한다. 영화 ‘살인소설’(감독 김진묵) 얘기다.
16일 서울 동대문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첫 선을 보인 ‘살인소설’은 한마디로 장르 불명의 영화라 표현해도 무방할 듯하다. 서스펜스로 시작해 블랙코미디를 이어가다 스릴러로 마무리되는데, 순간순간 장르를 변주하는 솜씨가 유려하다.
영화는 지방선거에 나설 집권여당 시장 후보로 지명된 경석(오만석)이 유력 정치인인 장인(김학철)의 비자금을 숨기려 내연녀 지영(이은우)과 함께 별장에 들렀다가 수상한 청년 순태(지현우)를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은 주인공이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과정을 숨 가쁘게 따라간다. 순태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극은 절정으로 치닫는데, 그 모든 사건의 고리가 치밀하게 연결되면서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
영화의 두 축은 오만석이 연기한 정치인과 지현우가 연기한 소설가. 감독의 설명을 빌리자면 “거짓말을 가장 잘하는 두 직업군”이다. 하나의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으면서 결국 누가 선(善)이고 누가 악(惡)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시사회 이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지현우는 “순태가 거짓말을 하면서 경석이 같이 거짓말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 부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다른 작품들에선 더 하고 싶어도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 많은데 이번에는 원하는 데까지 가볼 수 있었다”고 만족해했다.
지현우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극 중 순태는 이따금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그 순간에 여러 감정들을 담아내야 했다. 지현우는 “그냥 웃는 게 아니라 긴장감을 유지한 채 상대방의 대사를 들으려 했다. 입은 웃고 있어도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 차있는 듯한 느낌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오만석은 ‘우리동네’(2007) 이후 11년 만에 스릴러 장르로 돌아왔다. 그는 “사실 내가 연기하는 걸 보면 아직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부족한 게 많이 보여서 ‘좀 더 잘 살렸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다음번에 또 기회가 주어지면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겸손해했다.
두 사람의 대립이 얼마나 긴박감 넘치게 그려지느냐가 중요했다. 현장에서도 얼마간 긴장감을 유지해야 했다. 지현우는 “(오)만석이 형과는 뮤지컬을 함께한 적이 있어 호흡 맞추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역할에 몰입해 지낸 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저는 조용히 있는 편이었고 만석이 형이 주로 많은 얘기들을 해주셨다”고 했다.
오만석은 “나는 다른 스케줄 때문에 촬영장에 왔다갔다 했는데 (지)현우씨는 상주했다. 그런 점엥선 외지인과 현지인이라는 설정에 부합한 것 같다”면서 “현우씨는 대본을 녹음해 와서 계속 이어폰을 끼고 듣고 있더라. 전체를 다 꿰고 있어서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캐릭터는 경석의 아내 염지은(조은지)이다. 유력 정치인의 딸인 그는 ‘갑질’이 몸에 밴 안하무인의 인물. 이 역을 맡은 조은지는 “너무 센 악역이라 내 안에서 뭔가를 끌어내기보다 근 몇 년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몇몇 분을 참고했다. 그런 부분을 좀 더 살리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개봉일은 오는 25일. 용감하게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정면 대결을 택했다. 제작진은 “분명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큰 성공을 거두겠지만 다양한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에겐 이 영화가 선택의 폭을 넓혀줄 것이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춘 작품인 만큼 사랑을 받으리란 확신이 있다”고 전했다.
부패한 정치인의 민낯을 다른 이 영화가 공교롭게도 6·13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두고 개봉하게 됐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진묵 감독은 “초고를 쓴지 8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정치와 사회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유권자 혹은 관객들이 실제 어떤 인물에게 투표할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