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논객이 反文 댓글 조작… 드루킹, 의문의 이중행보

입력 2018-04-16 06:47

文 정부 비판적 댓글 조작 시기에 친문 핵심 인사 지지 활동도 전개
“나는 김경수와 청와대 조직” 위세 과시하며 모금한 정황도
작년 7월엔 트위터에 “나 건들면 진영 상관없이 피똥 싸게 하겠다”
댓글로 영향력 과시하려 했을 수도… 일부 친문 “과대망상 심해” 비판

수년간 친문(친문재인) 진영에서 ‘드루킹’이라는 닉네임을 쓰며 영향력 있는 논객으로 활동해 온 김모(48·구속)씨의 최근 행적은 극히 이중적이다.

김씨는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사무실을 마련해 놓고 조직적으로 문재인정부에 비판적인 댓글의 순위를 올리는 활동과 친문 핵심으로 분류된 일부 인사들을 지지하는 활동을 같은 시기에 전개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무리한 인사 청탁을 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반감을 품고 정부를 비난한 사건”이라고 한 해명과는 배치되는 대목이다. 김씨가 친문 지지자들에게 김 의원과 청와대 이름을 팔고 모금 활동을 했다는 의혹도 새롭게 포착됐다.

모순 덩어리 드루킹 행적

민주당 지지 모임에서 영향력 있는 논객인 A씨는 15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지난해 5월 말쯤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김씨를 만났을 때 ‘조직을 운영하는 데 돈이 몇십억원 필요하고 조달도 하고 있다’ ‘나는 김경수와 청와대 조직이니 내 밑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김씨의 제안을 거절한 뒤 관련 내용을 민주당에 알렸다고 밝혔다. 그는 “조사하고 대처하라 했는데 (당이) 너무 가볍게 여긴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대선 직후인 지난해 6월 21일에는 자신의 트위터에 “새 정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다보면 광화문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그래 문 대통령은 광화문 대통령”이라는 글을 올리며 민주당 인사들과 상당히 교류해 왔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한 달 뒤인 7월 18일에는 “이제부터 드루킹을 건드는 놈들, 진영을 가리지 않고 피똥 싸게 해주겠다. 점잖게 대하니까 호구로 안다”며 분노하는 글도 올렸다. 김 의원의 주장처럼 같은 진영 내 일부 인사들과 갈등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김씨가 반정부적인 댓글 활동을 진행해 친문 진영에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려 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김씨가 문재인정부 비판 댓글을 띄우는 방식의 여론 조작을 해온 배경은 여전히 석연치 않다. 경찰은 김씨가 지난 1월 17일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합의를 비판한 댓글 순위를 끌어올리려 한 정황은 확인했다. 그러나 김씨는 닷새 뒤 자신의 트위터에 전해철 민주당 의원이 경기지사 출사표를 던지며 했던 언론 인터뷰를 요약해 올리고 관련 기사 링크도 걸어뒀다. 하지만 전해철 의원은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친문 그룹에서는 평가 엇갈려

김씨는 2000년대 초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온라인 매체 ‘서프라이즈’의 게시판에서 ‘뽀띠’라는 필명으로 글을 써 네티즌에게 알려졌다. 문 대통령 지지 모임의 한 간부는 “얄팍한 지식과 정확한 팩트 없이 네티즌을 선동했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팟캐스트 ‘정치신세계’ 진행자 권순욱 NewBC 대표는 “2004년쯤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과대망상이 심했고 이상한 사람이어서 다시 안 만났다”고 했다.

김씨는 2000년대 후반엔 ‘드루킹’으로 필명을 바꾸고 네이버 블로그 ‘드루킹의 자료창고’를 직접 운영하며 유명세를 탔다. 경제 민주화를 목표로 한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카페 개설은 2014년에 이뤄졌다. 그는 회원들에게 “재벌 핵심회사 하나가 쓰러지면 그 파장은 경제시스템을 강타할 것이고 세상을 바꾸는 변화는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라며 “주식 10주의 의결권을 위임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씨는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 매크로 작업에 이용한 아이디를 이 카페 회원들로부터 받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씨는 카페를 통해 정치적 활동도 전개해 왔다. 2016년 9월 “민주당 권리당원은 6개월 동안 1000원의 당비를 납부해야만 (대선 경선) 투표 자격이 주어진다”며 “모든 회원들에게 민주당 당원가입을 권했다”고 밝혔다.

해당 모임에는 변호사나 의사 등 어느 정도 재력을 갖춘 인사들도 상당수 활동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모임에서 활동했던 서울 지역의 한 변호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다. 할 말이 없고 하고 싶은 말도 없다”며 강한 경계감을 드러냈다. 모임에 대해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점조직 형태로 운영됐고, 위에서 오더(지시) 내리는 것을 밑에서 무조건 따르는 형태였다. 김씨가 교주처럼 움직였다”고 했다.

김씨는 이후 점차 세를 확장해 가며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쳐 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운영하는 경공모 주최 토론회에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 유력 정치인들이 강사로 참여했다.

하지만 다른 친문 세력들은 그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부산 대표 이상호씨는 “문 대통령 지지자인 척하면서 (SNS에서) 관심을 끌고, 자신이 온라인 내 영향력이 있다고 과시하며 이해관계를 노린 것”이라고 했다.

허경구 윤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