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최순실씨가 항소심에서도 인상깊은 발언들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3일 최씨는 자신의 항소심 2회 공판기일이 끝날 무렵 재판부에 발언 기회를 요청해 10여분동안 준비해온 원고를 읽었다. 그는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며 심리를 맡고 있는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김문석)을 향해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최씨는 이날도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검찰과 특검, 1심 재판부에 대한 반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최씨는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을 선고한 것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며 “이미 딸은 승마선수 자격도 박탈당해 완전 밑바닥 인생을 걷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1심 재판부가 최씨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선고를 내리면서 공통된 양형이유로 들었던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공범 관계인 둘에게 “국정농단의 주된 책임은 국민이 부여한 헌법상 권한을 방기하고 사인(私人)에게 나눠준 대통령과 이를 통해 사익을 추구한 최순실에게 있다”고 지적했었다. 이에 대해 최씨는 “저는 박 전 대통령에게 권력을 나눠받은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누구나 K팝을 좋아하듯이 저도 그렇게 박 대통령을 좋아했다”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팬심’까지 고백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매료됐고, 그가 가진 아픔을 나누고 싶어 옆에 있었다며 “저와 대통령을 경제공동체로 모는 것은 남의 아픔과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여전히 특검과 검찰에 대한 불만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법계(法系)까지 언급하며 “차량과 말이 코어스포츠 소유라고 주장하는 특검은 독일법을 전혀 모르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또 “승마공주 의혹이 제기되고 딸(정유라)이 임신까지 한 상태에서 삼성에 말을 지원해달라고 하는 것은 정신병자다”며 거친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재벌로부터 밥 한 끼도 얻어먹은 적이 없다”고 했다.
최씨의 이같은 적극적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통상 피고인들이 변호인을 통해 법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과 달리 그는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로 억울함을 적극 피력해왔다. 지난 12월 14일 결심공판에서는 징역 25년이 구형되자 휴정 중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등 수사를 담당한 검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검찰도 출세와 야망을 버리고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길 간청드린다. 훗날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저를 정경유착으로 뒤집어씌우는 검찰의 발상은 그야말로 사기극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그의 발언에서 보듯, 검찰과 특검에 대한 반감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최씨는 수사를 받을 당시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고 소리치기도 했었다. 지난해 7월 딸 정씨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1심 재판에 증인으로 돌연 출석하자, 2주 뒤 최씨는 이 부회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회유와 강압으로 일관하는 특검을 믿지 못하겠다”며 증언을 거부했다. “특검은 제가 경제공동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삼족을 멸하겠다고 협박했다”며 “딸을 어떤 방식으로 강제로 법정에 데리고 왔는지 해명해야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또 북한에 억류됐다가 결국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웜비어’를 자신의 처지에 빗대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자신의 재판에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만약 고문이 있었다면 웜비어 같은 사망상태가 됐을 만큼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6~7개월간 외부인 접견을 막고, 화장실도 다 열려있는 1평 남짓한 방에 CCTV를 설치해 저를 감시하고 있다”며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1년여간 재판에 임해왔다”며 또다시 검찰을 겨냥했다.
지난 11일 1심 선고 후 57일만에 법정에 선 최씨의 눈빛은 1심 때보다 날카로웠다. 재판이 시작하고 구속 피고인 대기실에서 최씨는 천천히 걸어나오며 검사석에 앉아있는 검사들을 한명 한명 노려봤다. 항소 이유를 설명하는 검사를 매서운 눈빛으로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는 “이번 항소심 재판이 제가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항소심에서만큼은 아닌 건 아닌 것으로 재판장님과 두 배석판사님께서 진실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라고 항소심 재판부에 간청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은 항소 기한인 지난 13일까지도 항소에 대한 의사를 밝히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인 국가정보원 특활비 및 총선개입 사건에도 불출석하고 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