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제자들을 성희롱한 교수의 해임을 취소한 판결에 대해 피해자 입장에서 충분히 판단해야 한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성희롱 여부 판단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아닌 피해자 처지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2차 피해 등을 입을 수 있는 피해자는 신고 후 소극적인 진술을 할 수 있다며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갖고 그 같은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성희롱 소송의 심리와 증거판단 법리 기준을 대법원이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한 지방대학 교수인 A씨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해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가해자가 교수이고 피해자가 학생이며 그 행위가 학교 수업이 이뤄지는 실습실이나 교수 연구실 등에서 발생했다"며 "취업 등에 중요한 교수의 추천서 작성 등을 빌미로 성적 언동이 이뤄졌고 반복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사회 전체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는지를 기준으로 심리·판단했어야 옳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특히 피해자가 2차 피해 등을 입을 수 있는 상황에서 신고 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 심리를 할 때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 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며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 문화와 인식 등으로 성희롱을 문제 삼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등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2차 피해의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피해를 당한 후 가해자와 관계를 유지하거나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제3자의 권유로 비로소 신고하는 경우도 있고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이 같은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을 가볍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A씨는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면서 학과 여학생들에게 수차례 성희롱과 성추행을 했다는 이유로 지난 2015년 4월 해임됐다.
조사 결과 A씨는 여학생들에게 "뽀뽀를 해주면 봉사활동 추천서를 만들어주겠다" "남자친구와 왜 사귀냐, 나랑 사귀자"는 등 말을 하고 수업시간에 이른바 '백허그' 자세로 지도하는 등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1심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신에게 저항하기 어려운 여학생들을 상대로 반복적·지속적으로 성희롱했고 피해자들은 상당한 성적 수치심과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며 해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A씨가 평소 학생들과 격의 없고 자주 농담을 한 점에서 피해자가 성희롱 발언으로 느꼈다고 보기 어렵고 수업 중 이른바 '백허그'를 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고 강의평가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며 해임 취소 판결을 내렸다.
또 피해자 중 한명은 다른 피해자의 부탁으로 뒤늦게 신고했고 자신의 피해사실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진술을 거부한 점 등에서 성추행 피해자의 대응으로 볼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