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왜 김기식을 쉽게 놓지 못할까

입력 2018-04-12 17:50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지만 청와대는 요지부동이다. 청와대는 12일 김 원장의 ‘해외출장 갑질’ 등 제기된 의혹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식 유권해석을 의뢰했다고 밝혀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는 왜 김 원장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여기서 밀리면 안돼’…기득권의 조직적 저항으로 인식

유력한 해석은 청와대가 김 원장에 대한 야권 공세의 뿌리가 ‘기득권의 조직적 저항’에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김 원장이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 김 원장이 주도적으로 운영했던 ‘더미래연구소’에 정치후원금을 기부한 것 등의 의혹 제기 이면에 금융개혁을 막으려는 특정 세력의 방해가 있다는 인식이다.

김 원장은 ‘저격수’ ‘금융권 저승사자’ 등의 별명을 갖고 있다. 참여연대 시절부터 시작해 국회에 입성해서도 금융권과 대기업 지배구조를 담당하는 정무위원회에서 활약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금융감독원 수장에 김 원장을 앉힌 것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함께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해 개혁 드라이브에 더욱 고삐를 죄는 것이란 해석이 많았다.

최근 금융권이 유독 ‘적폐’로 인식될 수 있는 이슈와 연관된 점도 김 원장 취임에 무게를 실었다. 은행권의 낯 뜨거운 채용비리, 삼성증권의 ‘유령 주식’ 발행 등이 대표적이다. 김 원장은 정무위 시절 은행권의 과도한 대출금리 인상을 비판하고, 카드업계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적극 주장해왔다. 김 원장이 평소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보유를 비판해왔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김 원장이 금융위원회를 설득해 보험업 감독규정을 바꿀 경우 삼성생명은 약 17조5000억원 규모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하나금융 채용비리와 연루돼 불명예 사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원장마저 물러날 경우 금융개혁이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의 전방위 방어태세에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의 ‘인사 참사’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한국당이 김 원장의 해외 출장을 ‘정치자금 땡처리식 외유’로 비난하고, 더미래연구소 기부를 ‘다단계 셀프 돈세탁’ 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기류도 읽힌다.



◇정의당 돌아서고 국민여론도 악화…靑, 버틸 수 있을까

문제는 청와대와 여당을 둘러싼 여론 지형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의당이 이날 김 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당론을 채택하자 김 원장이 ‘데스노트’에 기록됐다는 말이 나왔다. 그동안 정의당이 반대해온 문재인정부 인사는 모두 낙마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문재인정부의 우군으로 평가받아온 정의당마저 임명 반대로 돌아선 것은 청와대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민 여론도 쉽지 않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11일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2일 발표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 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부적절한 처신이므로 김 원장은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50.5%를 기록했다. ‘재벌개혁에 적합하므로 사퇴해선 안된다’는 응답은 33.4%에 그쳤다. 연령별로도 50대(사퇴 찬성 53.4%, 반대 36.0%)와 60대 이상(찬성 59.1%, 반대 16.5%) 뿐 아니라 문재인정부의 주요 지지층인 20대(찬성 50.6%, 반대 25.9%)에서도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청와대는 김 원장의 해외 출장 등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비판을 수용하면서도 객관적인 판단을 받겠다며 이날 임종석 비서실장 명의로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19대 국회 임기말 후원금 기부와 보좌진 퇴직금 지급, 피감기관 돈으로 다녀온 해외출장, 해외출장 시 인턴 및 보좌진 동행과 관광 등에 대해 적법성 여부를 따져보겠다는 의도다.

청와대는 또 19대와 20대 국회의원이 피감기관 16곳의 돈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사례가 167차례(민주당 65차례, 한국당 94차례)나 된다며 한국당을 향해 역공을 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김 원장의 출장이 평균 이하 도덕성을 지녔는지 더 엄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