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통령 개헌안’을 놓고 토론하는 자리에서 ‘자료 출처’ 때문에 뜬금없는 신경전을 벌였다. 나 의원 측이 잘못된 자료를 준비해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11일 방송된 MBC ‘100분 토론’은 ‘대통령제 vs 책임총리제, 30년 만의 개헌 가능할까’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나 의원과 장영수 고려대 법과대학 교수는 한국당에서 2일 확정한 분권형 대통령제·책임총리제 중심의 개헌안 채택을 주장했다. 유 작가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에 반박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옹호했다.
양측은 토론 후반부쯤 대통령 개헌안에 명시된 토지공개념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소유와 처분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절히 제한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이를 두고 “이것까지 도입하면 이건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유 작가는 “사회주의 헌법이라는 비난을 받으려면 기존 헌법 제23조 제1항과 제126조가 삭제돼야 하는데 대통령 개헌안에 그대로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헌법 제2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제126조는 ‘국방상 국민 경제상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 작가는 “토지공개념 신설에 대해 정책적 논의를 하거나 반대할 수는 있다”면서 “하지만 이걸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하는 건 무식의 소치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가 반박에 나섰다. 장 교수는 대통령 개헌안 제128조 제2항을 언급하며 “여기에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고 하고 끝났다. 법률이라는 말이 없다”고 지적했다. 유 작가와 박 의원은 동시에 반발했다. 유 작가는 “법률로서가 있다”고 했고, 박 의원은 “여기 있는데”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가진 자료에 ‘법률로서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었다.
나 의원이 자신이 가진 자료에도 ‘법률’이란 단어가 없다고 하자 유 작가는 “청와대 PDF 파일 다운받은 것”이라며 종이를 들어 보였다. 나 의원은 “저도 이거 다운 받았다. 직원들이 받아줬다”고 말했고, 동시에 방청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박 의원은 “그래서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하셨으면 그 간판을 빨리 떼라”고 했다
나 의원이 이후 “토지 공개념뿐 아니라 동일 노동·임금 원칙 등을 헌법에 추가하는 게 많이 걱정되는 부분”이라고 수습에 나섰지만 당황한 듯 말을 이어가던 도중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헌법은 정부 성향에 따라 해석이 가능하도록 좀 더 공백상태를 줘야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 개헌안은 너무 민주당 쪽으로 가 있고 그런 색채가 보이니 권력구조만이라도 바꾸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방송 이후 나 의원은 SNS에 토론 소감을 밝히며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 있는 대통령 개헌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녹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면서 청와대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개헌안과 닷새 뒤 국회에 제출한 서류를 비교했다. 첫 번째 문서에 따르면 토지공개념을 다룬 제128조 제2항 어디에도 ‘법률로서’라는 문구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두 번째 문서에서 추가됐다. 나 의원 측은 첫 번째 자료를 토대로 토론을 준비한 터였다. 그는 “대통령 개헌안이 얼마나 졸속으로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강조했다.
나 의원은 이어 “다시 깨달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은 헌법 개정안에서 인사권, 예산권, 법률제출권 중 실질적으로 내려놓은 것이 전혀 없다”면서 “결국 제왕적 대통령제는 그대로 두고 사회주의적 헌법으로 운용될 수 있는 부분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