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일컬어 “대통령의 직무권한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 권력형 부정축재”라며 구속 수사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 전 대통령이 기업인과 정치인, 종교인 등 민간영역에서 챙긴 뇌물은 공소장에 적시된 것만 100억원이 넘는다.
뇌물죄는 공여자도 처벌하게 돼 있지만 이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이들 중 재판에 넘겨지는 건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유일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공여자들은 공소시효의 벽에 막혀 현실적으로 처벌이 어렵다. 뇌물공여죄의 공소시효는 7년(2007년 12월 이전은 5년)인데 범행은 대부분 2011년 4월 이전에 일어났다. 형사상 불소추 특권이 있는 대통령은 재임 기간 공소시효가 정지되지만 대향범(對向犯·필요적 공범) 관계인 뇌물공여자의 경우 공소시효 진행은 계속된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22억6230만원의 금품을 이 전 대통령 측에 건넸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월 검찰이 자택 압수수색에 들어오자 메모지 한 장을 씹어 삼키려 하기도 했다. 수사관이 황급히 입에 손가락을 넣어 종이를 빼내려다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문제의 메모지엔 돈을 건넨 인물과 금액이 적혀 있었다. 그의 집 창고에서는 금품 전달 정황이 상세히 기록된 비망록도 발견됐다. 그런데 이 전 회장이 마지막으로 뇌물을 건넨 시점은 2011년 2월 1일로,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상황이었다.
김소남 전 의원은 4억원,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 5억원, 손병문 ABC상사 회장 2억원, 지광(본명 이정섭) 능인선원 주지가 3억원을 이 전 대통령에게 제공했다. 범행 시기는 김 전 의원이 2007년 가을∼2008년 4월, 최 회장은 2007년 9∼11월, 손 회장과 지광 주지는 2007년 12월로 파악됐다. 모두 공시시효가 완성된 상황인 것으로 검찰은 본다.
다스의 미국 소송비를 대납한 삼성은 공소시효 사정권 안에 있다. 삼성은 2007년 11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총 585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67억원)의 소송비를 대납했다. 이는 연속된 하나의 범죄(포괄일죄)로 오는 11월까지 공소시효가 살아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전 부회장이 지원방안을 보고했고 이건희 회장이 이를 승인했다. 의식불명 상태로 알려진 이 회장은 기소중지 처분되고 이 전 부회장만 재판에 넘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10일 이 전 대통령의 111억원 뇌물 혐의 등에 대한 범죄수익 환수를 위해 추징보전 명령을 청구했다. 동결 조치 대상에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을 비롯해 경기도 부천 공장부지 등 차명재산도 포함됐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