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30)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빙상계 최고의 스타다. 스타를 넘어 ‘영웅’으로 칭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나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에서 초대 챔피언으로 우뚝 서면서 다시금 저력을 뽐냈다. 그런 그가 ‘적폐 논란’에 휩싸였다. 올림픽이 끝나고 빙상계에 몰아친 폭풍은 정면으로 그를 향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승훈의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청원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10일 오후 이승훈의 은퇴나 메달 박탈을 요구하는 청원 글은 10여 건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경계하고 있다. 총구는 오로지 ‘대한빙상경기연맹’을 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스포츠맨십’ 어긋난 金…“당연히 회수해야”
7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118회는 ‘겨울왕국의 그늘-논란의 빙상연맹’이라는 주제로 방송됐다. 이승훈은 이날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이자 한국체육대학교 교수의 가장 큰 비호를 받은 수혜자로 그려졌다.
여론은 순식간에 돌아섰다. 이제 ‘적폐’라는 수식어도 따라 붙었다. 제작진은 전 교수가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이승훈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도록 정재원(18) 선수를 페이스메이커로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2011년 동계아시안게임 때도 전 교수의 지시로 이승훈보다 기록이 좋은 선수를 페이스메이커로 나서게 했다는 증언도 함께 보도했다.
당시 매스스타트에서 이승훈은 정재원과 함께 결승에 나섰다. 경기 중·후반까지 정재원은 이승훈 앞에서 경쟁자들을 흔드는 레이스를 펼쳤다. 이승훈이 체력을 비축할 수 있도록 상대의 체력을 소진케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이승훈은 막판 스퍼트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알려진대로 매스스타트는 팀 경기는 아니다. 물론 국가 대항전도 아니다. 올림픽헌장 6조에는 ‘모든 경쟁은 개인 간 또는 팀 간 경쟁이고 국가 간 경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개인전인 경기에서 국가 간 ‘작전’이 사용됐다는 사실은 모두를 의아하게 만들었지만 ‘아름다운 희생’ 정도로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보도에 따르면 그곳에 ‘아름다움’은 없었다. 그렇게 포장해서는 안되는 ‘유망주의 희생’만이 있었다.
◇ 왜 ‘이승훈’을 몰아붙이나…“비난 대상 잘못됐다”
비난은 이승훈 몫이 아니라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승훈 선수 메달 박탈이라니요. 빙상연맹의 잘못된 운영을 개선해야 하는 게 본질 아닌지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매스스타트 사태를 만든 것은 이승훈이 아니라 빙상연맹이라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청원자는 “몰아주기는 잘못이지만, 이승훈 선수가 시킨 건 아니잖아요. 만약에 시킨 자가 있다 하면 그건 한국 빙상연맹입니다. 제발 이승훈 선수 말고 빙상연맹을 체포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일각에서는 매스스타트의 경우 같은 나라 선수끼리 작전을 세우는 게 일반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종목 특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승훈 선수 입장도 이와 같다. 지난달 14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이승훈은 ‘몰아주기’라는 지적에 대해 “개인전이지만 팀 전술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는 “유럽 선수들은 거의 유럽 연합”이라면서 “예전에는 나 혼자 했었는데, 올림픽 때는 정재원 선수가 같이 결승에 올라와 더 수월했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