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USKI)가 다음 달 문을 닫는다. 이에 따라 USKI가 운영하는 북한전문 매체 ‘38노스’도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로버트 갈루치 USKI 이사장은 9일(현지시간) “한국 정부의 ‘전적으로 부적절한 간섭’을 거부하고 5월에 연구소 문을 닫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갈루치 이사장은 구재회 USKI 소장을 교체하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가 부당한 압력이라며 반발해 왔다.
미 국무부 북핵 특사를 지낸 갈루치 이사장은 “한국이 두 개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한·미 관계 연구가 목적인 USKI의 문을 닫도록 하는 게 기이하다”며 “한국이 자신의 발밑을 겨냥하는 데 좀 더 신중할 수 없었느냐”고 개탄했다. USKI의 문을 닫는 것이 한국에 손해라는 뜻이다.
한미연구소(USKI)는 남북 문제를 다룬 ‘두개의 한국’을 쓴 기자 존 오버도퍼와 주용식 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주도해 2006년 설립된 기관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공동연구 협력기관이며 매년 정부지원금을 받는다.
구재회 소장은 2007년 취임해 10년간 소장 직을 맡아왔다. 하지만 이번에 정부가 교체를 추진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USKI 측은 “학문 자유에 대한 부적절한 개입”이라고 비판했지만 문재인정부 출범 전부터 불투명한 회계 관리 문제가 불거졌던 점은 사실이다.
국회에서는 2014년부터 USKI 문제가 논의됐다. 당시 예산안 심사에서 김기식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금융감독원장)이 연구소의 예산 편성 및 집행의 불투명성 등을 거론했다. 매년 20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는데 그 사용 내역이 불투명하고 실적이 초라하다는 게 요지였다.
이후 국회는 USKI 상급기관인 KIEP를 통해 연구소 운영 개선안 제출 등을 요구했다. 매년 USKI의 불성실한 자료제출이 문제가 돼 실제 예산이 삭감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삭감 예산은 대부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거치며 복원되는 일이 많았다. 낙선한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이 연수 목적으로 이곳을 자주 찾으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결국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사달이 났다. 민주당 정무위 간사인 이학영 의원은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김준영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사연) 이사장을 상대로 국회의 예산 사용 내역 요구에 대한 USKI의 두 장짜리 증빙 자료를 비판했다. 이 의원은 “예산이 21억원이 지원되는데, 사용관련 보고서를 보면 인건비 얼마, 사업이 얼마 정도로 해서 증빙 자료가 제목만 있다”며 “시골의 계모임도 이렇게까지는 안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는 ‘2018년 3월까지 불투명한 운영상황을 개선한다’는 전제 아래 조건부로 정부지원금 20억원을 승인했다.
경사연과 KIEP가 나서서 구 소장 교체를 추진한 것도 이 즈음이다. 김준동 KIEP 부원장은 지난해 11월 USKI 개선 방안을 홍일표 청와대 정책실장실 행정관에게 두 차례 보고했다. USKI 측에도 구 소장의 교체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USKI가 구 소장 교체를 거부하자 KIEP 상급 기관인 경사연이 지난달 29일 이사회를 열고 USKI에 대한 정부 지원 중단을 결정했다. 그리고 지난 5일 USKI에 이를 통보했다. 이 과정을 두고 문재인정부가 국책연구기관장에서 보수 인사를 퇴출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청와대는 국회 논의에 따른 후속조치일 뿐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구 소장을 교체하려 한 게 아니라 국회에서 2014년부터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라며 “국회 결정에 따라 지난달 31일까지 투명성 보고서를 내야하는 상황에서 KIEP와 USKI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된 것 같다”고 말했다.
홍 행정관이 교체 작업을 주도한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서는 “KIEP가 청와대 정책실 소관 기관이어서 업무를 담당한 것”이라며 “홍 행정관은 김기식 의원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보좌관이었던 만큼 USKI 문제에 해박하다”고 반박했다. 연구기관에 대한 미국의 기부 문화와 한국의 정부 지원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논란이라는 해석도 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