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관은 그동안 여성문제를 비롯해 사회격차 해소와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현장에 몸담아 왔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고령화미래사회위원회·사회정책비서관실 행정관을 역임했고,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양극화민생대책위원회 비서관을 지냈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이 차관은 “국내외적으로 페미니즘이 새롭게 조명 받는 시점에 성평등 실현을 국정 핵심가치로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에서 일하게 돼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평등 실현에 대한 온 국민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현재,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데 책임감이 크다”고 덧붙였다.
민관합동 ‘좋은 여성일자리 늘리기 기획단’과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점검단’ 단장을 맡고 있는 이 차관은 여성일자리, 여성폭력문제를 가장 시급한 당면현안으로 꼽았다. 이 차관은 여성문제와 관련해 “부처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정부 정책을 차질 없이 이행하고, 민관 거버넌스를 활성화해 개선점을 발굴, 보완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미투 운동’과 관련 여가부의 대처가 소극적이었다는 평가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이러한 지적은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 현행 법체계상 여가부는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관련 권한이 있지만, 직장 등 민간 부문은 고용노동부, 문화예술계는 문화체육관광부, 대학 등 학교는 교육계와 협력해야 한다. 직권조사 권한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가지고 있다. 여가부가 관계부처를 총괄 조정할 조직 및 예산 등 실질적 수단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여가부가 컨트롤타워로서 정부 대응책 마련을 위해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투 운동이 불거진 이후 1개월 만에 범정부 협의체를 구성하고, 2개월 내 대책 추진 점검단을 구성했다. 임기응변식이 아니라 근원적이고 체계적인 대책 마련에 다소 시일이 걸린 것으로 평가하면 좋겠다. 그만큼 정부에서 이 문제를 매우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
-현재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료법률지원이나 신고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신고를 피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에 대한 정부의 복안은.
“사건조사와 처리과정에서 철저히 피해자 관점이 반영되도록 하고 있다. 우선 경찰조사 과정에서 가명(假名) 조서가 적극 활용되도록 하고, 경찰청 내 미투 피해자 보호관을 별도로 지정하도록 했다. 성폭력 피해 상담과정에서 피해자가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불이익을 받는 정황이 확인되는 즉시 원스톱지원기관인 해바라기센터와 연계해 경찰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악성댓글에 대해서도 사이버수사 등을 통해 엄정대응할 것이다. 피해자를 가해자 협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피해사실 공개로 인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위법성 조각사유를 적극 적용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여가부가 피해자에게 2차 피해는 없는지, 가해자 사건처리는 엄정하게 이뤄지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사례별 관리를 추진하겠다.”
지난달 30일 정부는 여가부와 관계부처(교육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인사혁신처, 국가인권위원회, 경찰청) 파견 직원 16명으로 구성된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 점검단’을 출범해 운영 중이다.
점검단의 주요 역할은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 추진상황 이행점검 및 보완대책 마련 △특별신고센터 운영 △사건 발생기관 등 특별점검 △관계부처 및 유관기관 협업 등을 맡고 있다.
이 차관은 “앞으로 민간기관, 피해자 지원단체 등과 더욱 긴밀히 소통하고, 일련의 종합대책들이 보다 실효성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점검하고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의 반작용으로 펜스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최근 펜스룰과 같은 성별분리는 성범죄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여성에게 또다른 차별의 우려가 있다. 여성을 채용하지 않거나 출장과 업무에서 배제하는 행위는 남녀고용평등법과 근로기준법에 위반하는 명백한 범법행위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있다. 고용노동부 등과 협력해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위반 사업장에 대해 엄정한 조치가 취해지도록 하겠다. 이러한 조치들이 원활히 추진되도록 펜스룰 사례를 수집하고 실태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성평등한 직장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성평등 면접 가이드라인을 제작·배포하고, 포럼과 캠페인 등을 다각도로 펼치고자 한다.”
-미투 운동에서 이주여성과 장애여성들이 다소 소외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실제로 이주여성은 의사소통의 어려움, 불안정한 체류상황 등으로 피해사실을 알리고 대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다. 정부는 지난달 이주여성 성폭력 종합대책에서 체류상태에 관계없이 권리구제 절차가 종료될 때까지 합법적인 체류를 허용하기로 하는 진전된 방안을 마련했다. 여가부 차원에서도 외국인 등록여부와 무관하게 보호시설에 입소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폭력피해 이주여성 문제를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전문상담소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다누리콜센터, 이주여성쉼터 등 기존 지원체계는 연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여성장애인 인권보호를 위해서는 장애인 성폭력 상담소 23개, 가정폭력피해 상담소 3개를 운영하면서 종합적인 상담·의료·법률 지원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시설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에게는 수사, 치료 등에 대한 동행서비스도 제공한다. 정책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현장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겠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는 교육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부각되고 있다.
“우리사회에 심각한 성희롱·성폭력 문제는 일부 개인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근본적으로 뿌리 깊은 성차별적 인식과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와 성평등한 관점을 키울 수 있도록 성평등 교육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 실제로 최근 활동을 마친 성평등 문화 확산 태스크포스 최종보고서에서도 미디어의 순기능과 더불어 성평등 교육이 절실한 과제로 부각된다. 그동안 성에 대한 논의가 비공식적이고 폐쇄적으로 이뤄지면서 왜곡된 지식과 고정관념이 공고해졌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열린 공간에서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과 사회적 문화 개선이 가장 근본적 해법이 될 것이다.”
-정부에서는 성평등 교육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가.
“여가부와 관계부처가 함께 아동·청소년기부터 전 생애에 걸쳐 올바른 인권의식과 성인식을 갖도록 하는 성평등 교육 강화에 노력 중이다. 현재 교육청과 협력해 전국 8개 시·도 169개교에서 인권+성평등+폭력예방교육이 결합된 통합 성인권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앞으로 예산을 확충해 전국 17개 시·도로 확대 운영을 계획 중이다. 한편 학교 성교육표준안이 성평등과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협의를 거치고 있다. 아울러 교과서 성평등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교사·예비교사 대상교육이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저출산 문제도 시급한 해결이 필요한 당면 과제인데.
“여성고용률이 높으면 출산율도 함께 오른다. 여가부가 저출산 해법의 하나로 출산·육아기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에 주목하는 이유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자녀돌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이웃 간 육아품앗이 공간인 ‘공동육아나눔터’ 확대에 힘쓰고 있다. 현재 160개소를 올해 안에 260개소로 늘리고, 운영방식을 다양화해 접근성도 더욱 높일 계획이다. 시설보육의 공백을 메우고 맞춤형 돌봄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아이돌봄서비스도 개선한다. 이용자가 몰리는 집중시간대를 설정하는 등 수요·공급 미스매치를 해소하겠다. 또한 성평등한 사회일수록 출산율이 높다. 일터와 삶터에서 성격차 해소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 성평등임금공시제 도입을 추진하고, 남성육아휴직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가족친화인증제를 일·생활 균형 중심으로 개편하면서 남성들도 돌봄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여가부는 현재 경력단절여성들을 좋은 일자리로 연계할 수 있도록 3D 프린팅이나 사물인터넷(IoT) 기반 디자인전문가 양성과정 등 고부가가치 직종 직업훈련 과정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세대별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30대 여성들을 위해 전공·경력을 고려해 전담인력이 상담·훈련·구인 알선 등 전 과정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사례관리형 경력이음 서비스를 하반기부터 시작한다. 중장년층을 위해서는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산업과 연계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15개 새일센터에서 경력단절 예방을 위한 노무·심리상담, 기업컨설팅·교육 등을 진행하는 경력단절예방서비스를 시범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양육비 대지급제도 도입 등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었다. 한부모가족의 양육비 이행지원 강화를 위한 방안이 있다면.
“비양육부모의 양육비 이행 책임성을 높이고, 양육한부모의 양육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관련 법 개정과 국민인식 개선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지난 2월 법 개정으로 오는 10월부터 한시적 양육비 지원기간이 최대 9개월에서 12개월로 연장됐다. 또 비양육부·모 동의 없이 소득·재산 조사가 가능해졌다. 앞으로 법무부와 협조해 양육비 채무 불이행시 감치 처분 기준을 현행 3개월에서 1개월 미지급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양육비 대지급제는 양육비를 지급받을 여력이 없는 미혼모·부에게 정부가 먼저 양육비를 지급하고 나중에 비양육부모에게서 환수하는 방식이다. 이에 현행 복지체계와 구상권 실효성 확보수단, 양육비 미이행 비양육부·모에 대한 제재조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도입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현재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학교 밖 청소년, 가정 밖 청소년 등 위기청소년을 위한 대책은.
“위기를 겪는 청소년들이 필요한 사회보호와 지원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현재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 검정고시 등 교육지원, 취미 및 특기적성 프로그램, 정기건강검진, 직업훈련 등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먼저 찾아가고 있다. 앞으로 거리청소년들을 직접 찾아가 필요한 전문상담과 지원을 제공하는 거리상담요원(아웃리치 전문요원)를 계속 늘려갈 계획이다. 경찰, 의료기관, 교육기관 등이 연계한 지역사회 청소년통합지원체계(CYS-Net)가 더욱 통합적·예방적으로 사회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자체 중심으로 강화하겠다. 아울러 청소년들이 올바른 인권인식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청소년활동 프로그램에 민주시민 의식을 강화하는 콘텐츠를 포함시킬 예정이다.”
-향후 포부를 전한다면.
“무엇보다 여가부가 지향하는 가치는 성별에 근거한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제도와 문화를 바꾸고, 실질적 성평등 사회로 가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이를 위해 주무 차관으로서 제도 개선은 물론 현장과의 소통에 주력하겠다.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해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고, 가해자를 엄벌하는 체계 및 사회분위기 정착에 힘을 쏟겠다. 이를 통해 국민이 체감하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게 최대 목표다.
양정원 기자 yjw7005@kmib.co.kr
<이숙진 차관>
-1964년 출생
-광주중앙여고 졸업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이화여대 여성학 석사, 박사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전략사업센터 부교수
-대통령비서실 행정관(고령화미래사회위원회, 사회정책비서관실)
-대통령비서실 비서관(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양극화민생대책위원회)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
-한국여성재단 상임이사
-現 여성가족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