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 ‘비핵화’·시기 ‘5월∼6월초’ 북미정상회담… 남은 이슈는

입력 2018-04-10 09:1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양국 사전 접촉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논의한다”는 의제와 “5월 또는 6월 초에 만난다”는 시점이 도출됐다. 이제 회담 장소 정도만 합의되면 만남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회담 성패를 좌우할 최대 이슈인 ‘비핵화 방법론’은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5월이나 6월 초 언젠가 만나기로 했고, 양측 모두 존경심을 갖고 조만간 북핵 문제를 협상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회담을 위해) 북한과 접촉해 왔다”고 인정했다.

이어 “우리는 북한과 비핵화에 대한 협상이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또한 (양국) 관계가 아주 오래전 그때보다 훨씬 더 달라지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북한과 회담을 마련했고, 이는 전 세계를 매우 흥미롭게 할 것”이라고도 했다.

당초 5월로 예정됐던 회담 시기가 다소 늦춰질 수 있음을 언급한 것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의제와 시기를 공개하면서 북미회담은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미국 언론은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실제 성사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미국 측에 ‘비핵화 협상’을 할 의향이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즉석에서 받아들인 지 한 달 만이었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은 8일(현지시간)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북한이 비핵화를 논의할 의향이 있다는 뜻을 백악관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이 북한으로부터 비핵화 협상 의지를 직접 확인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비핵화 논의가 이뤄진다고 해서 회담의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비핵화 개념과 방식, 절차 등에 있어서 북·미 간 입장이 많이 다르다.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한에 대한 경계심은 여전하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북한은 지난 12년간 핵무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내내 ‘비핵화 논의 의향이 있다’고 했다”며 “비핵화 논의가 비핵화 행동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쟁점은 비핵화 방법론이다. 미국은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방식을 주장한다.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돌이킬 수 없는 해체’를 의미한다.

반면 북한은 단계별 비핵화를 내세운다. 김 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공론화했다. 북한이 단계별 비핵화를 제안한 것은 단계별 제재 완화와 경제적 지원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핵·미사일 실험동결→핵물질 생산 유보→핵미사일 배치 중단→사찰 및 검증’ 등이 진행될 때마다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2005년 6자회담 합의 당시 써먹은 레퍼토리를 또다시 되풀이한다며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접점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을 만났을 때 북한 체제를 완벽하게 보장하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또 미국 요구대로 비핵화 소요 기간도 크게 단축할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체제보장과 핵무기 개발을 맞바꿀 수 있다는 얘기인데, 이는 북한의 기존 입장에서 크게 물러서는 것이다. 다만 완벽한 체제보장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연합훈련 중단,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공 금지를 의미한다면 회담이 겉돌 수 있다.

북·미는 또 아직 정상회담 장소를 정하지 못한 상태다. 북한은 평양을 선호하지만, 미국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이 판문점이나 한국에서 열리는 것을 기피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한국의 중재자 역할이 돋보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