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 모녀 죽음이 남긴 것] 자살 유가족 ‘위험’ 8.3배 높지만… 관리 시스템이 없다

입력 2018-04-10 06:34

글 싣는 순서
<상> ‘24시간 핫라인’ 내실화해야
<중>이웃 관심이 사각지대 줄인다
<하>자살자 유가족 돌봄 확대해야

129 전화해서 상담하면 긴급복지지원 이뤄지지만 인지도 낮아 이용률 적어
복지사각 발굴시스템에도 증평 모녀 포착되지 않아

남편 자살 후 증평 모녀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반년 가까운 시간이 있었다. 1억5000만원의 빚, 지인과의 연락두절, 아파트 관리비와 월세 체납 등 모녀의 마지막 흔적에는 구조를 요청하는 위기 신호가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결국 ‘남편이 숨진 뒤 정신적으로 힘들다. 혼자 살기 너무 어렵다’는 내용의 유서만 남긴 채 숨졌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복지 사각지대 시스템을 강화하기로 했다.

위기의 가정이나 개인이 가장 빨리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경로는 24시간 운영되는 보건복지상담센터 핫라인이다. 국번 없이 129로 전화하면 즉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긴급복지지원이 필요하거나 우울증을 앓는 등 경제·심리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위한 제도다.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지인이 전화해 대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인지도가 낮은 편이고 인력이 부족해 실제 이용률은 적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140여명의 상담사가 근무하는 이곳은 하루 평균 4488건(지난해 기준)의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사 한 명당 32통의 전화를 받는 셈이다. 낮은 인지도를 개선하기 위해 복지부가 매년 홍보 광고를 시행하고 있지만 효과는 더디다. 2016년 161만5012건에서 지난해 163만8281건으로 1.4% 오르는 데 그쳤다.

센터 관계자는 9일 “인지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매년 홍보 예산을 편성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 개선해나가야 할 문제”라고 했다.

남편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트라우마도 위로받지 못했다. 129센터는 자살 상담자를 가까운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연계해 돕기도 한다. 하지만 129센터는 물론 모녀가 거주했던 증평군 정신건강복지센터도 이들에게 별도의 상담을 제공한 적이 없었다. 정신건강복지센터 관계자는 “자살시도자나 복지사각지대 주민들의 경우 우리가 직접 월 2회 방문상담을 하지만 자살 유가족은 별도 모니터링 시스템이 없다”며 “(증평 모녀에 대해서는) 파악된 바가 없었다”고 했다.

자살 유가족의 자살 위험은 일반인의 8.3배나 되지만 별도 관리 시스템이 없어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전명숙 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은 “개인정보 문제 때문에 자살 유가족의 신상을 저희가 따로 받아볼 방법이 없다”며 “이들에게 국가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길은 유가족이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모녀는 경제적 도움도 받지 못했다. 2015년 12월부터 시행된 복지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도 이들을 빗겨갔다. 복지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은 금융신용정보에서 1000만원 미만의 빚을 진 이들에 대한 정보만 받는다. 빚이 많으면 저소득층이 아닐 확률이 많다는 이유다. 사망 전 증평 모녀는 제2금융권에 최소 1억5000만원의 빚이 있었다. 모녀는 남편이 숨진 뒤에는 전기료 등이 포함된 관리비와 아파트 월세를 모두 체납했지만 민간업체에서 관리하는 아파트에서 거주한 탓에 이 또한 시스템에 잡히지 않았다.

복지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 관리 범위를 넓혀나가기로 했다. 가구주 사망이나 일정 기간의 실업 등으로 주소득원을 상실한 가구는 금융 부채와 연체 정보를 조사해 발굴할 계획이다.

이재연 최예슬 김성훈 심우삼 기자 jaylee@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