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 복용에도 불면증 “공정 수사 기대하기 어렵다” 검찰 조사 전면 거부
김윤옥 여사 조사도 불발
3평 독방 한구석에서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예상치 못한 구속영장 청구와 수감 생활에 따른 분통, 아들과 부인까지 수사선상에 오른 현실에 대한 원망을 주변에 토로했다고 한다. 그는 불면증에도 시달리고 있다. 수면제를 삼켜 봐도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길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퇴임 1844일 만에 피의자로 검찰에 소환된 전직 대통령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준비한 입장문을 읽어 내려갔다.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와 관련된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 전 대통령은 정작 이튿날 오전까지 이어진 검찰 조사에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차명 소유 의혹이 제기된 다스(DAS)와 서울 도곡동 땅은 “나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등 돌린 측근들을 향해선 “죄를 덜기 위해 허위로 진술한 것 같다”고 일갈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19일 이 전 대통령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뇌물과 횡령 등 방대한 혐의가 207쪽짜리 구속영장 청구서를 빼곡하게 채웠다. 이 전 대통령이 불출석 사유서를 내면서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열리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2일 밤 “범죄의 많은 부분이 소명됐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전 대통령은 구속영장 발부 직후 페이스북에 자필 메모 3장을 올렸다. 구속을 예감한 듯 미리 준비한 메모엔 “지난 10개월 동안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 가족들은 인륜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자택을 찾은 가족과 측근들에게는 “이런 세상이 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관용차에 올랐다. 서울동부구치소에 도착한 그는 수인번호 716번이라고 새겨진 옥빛 수의로 갈아입었다. 23일 새벽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수감 첫날 변호인을 접견한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할 것이라면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수사팀이 옥중조사를 시도하자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검찰 조사를 전면 거부했다. 검찰 수사팀이 26일과 28일, 지난 2일 세 차례 구치소를 찾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끝내 조사실에 나오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에 대한 검찰 조사도 불발됐다. 검찰은 지난달 29일 자택과 검찰청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김 여사를 조사할 계획이었다. 김 여사는 그 전날 변호인을 통해 한 장의 서한을 검찰에 전달했다. ‘대통령이 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면목으로 검찰 조사에 응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