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주식’ 판 삼성증권 직원들 수십억원 토해내야 할 듯

입력 2018-04-10 00:36
원승연 금감원 부원장

삼성증권이 112조원 규모의 주식배당 사고를 내는 과정에서 배당 입력 오류를 하루 동안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 결재자는 오류를 확인하지도 않고 승인하는 등 통제 시스템 부실이 민낯을 드러냈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잘못 배당된 주식을 판 일부 삼성증권 직원은 수십억원대의 매매차손을 떠안을 처지가 됐다.

삼성증권은 9일 투자자 피해구제 전담반을 꾸리고 이날 오후 4시까지 피해 사례 180건을 접수했다. 지난 6일 삼성증권 주식이 급락할 때 매도한 투자자 등이 보상 대상이다. 주식을 판 직원 16명에 대한 징계 혹은 형사고발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직원들이 ‘점유이탈물횡령죄’ 등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 잘못 발행된 주식은 삼성증권이 전량 삭제했기 때문에 주식을 판 직원은 결국 본인 돈으로 주식을 사서 채워야 한다. 한 직원은 100만주가량을 판 것으로 알려졌는데 삼성증권의 전날 최저가(3만5150원)와 9일 종가(3만7200원)를 단순 비교하면 약 20억원의 손해를 입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삼성증권은 직원들도 손해를 본인이 부담한다는 방침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원래 존재하지도 않는 주식이 전산상으로 발행돼 유통까지 된 초유의 사고에 금융 당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원승연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기자 브리핑을 열고 “자본시장의 가장 핵심인 신뢰를 저해하는 중대사건”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금감원은 삼성증권에 직원 3명을 파견해 주식 결제 이행 과정에 대한 특별점검에 돌입했다. 금융 당국은 배당 사고가 1차적으로 회사 차원의 통제 부실로 발생한 것으로 본다.

삼성증권 배당 담당 직원은 지난 5일 현금배당을 주식배당으로 잘못 입력했는데 다음 날 오전 9시30분 직원들 계좌에 주식이 들어갈 때까지 오류를 전혀 알지 못했다. 담당자는 9시31분 오류를 알았고 9시51분부터 사내망에 팝업(pop-up) 알림창으로 세 차례 ‘매도금지’ 공지가 떴다. 하지만 직원들의 주식 매매가 정지된 건 오전 10시8분이었다. 담당자가 실수를 알게 된 후 37분이 지나는 동안 이미 501만여주가 시장에 팔렸다. 삼성증권이 주식배당과 현금배당을 시스템상 같은 화면에서 처리해온 것도 사고 원인으로 꼽힌다.

금감원은 이날 삼성증권 구성훈 사장을 면담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금감원은 전날 삼성증권이 배포한 사과문에 직원 실수와 관련된 사과는 있었지만 경영진의 자체 사과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구 사장은 본인 명의로 사과문을 배포했지만 직접 언론에 나서서 사과하지는 않았다. 지난달 21일 선임된 구 사장은 한 달도 안 돼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장 대형 증권사들이 경쟁하고 있는 초대형 투자은행(IB) 업무 인가에서는 더 뒤처지게 됐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금융 당국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된다. 시장에 발행돼 있는 삼성증권 주식 8900만주의 31배가 넘는 주식이 새로 찍혀 유통되는데 금융 당국, 한국거래소, 예탁결제원 등 증권 유관기관 어느 곳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금감원은 증권사의 시스템 점검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없는 주식을 시장에 파는 ‘무차입 공매도’라고 주장한다. 과거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지 전수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증권사 조사 및 공매도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9일 오후 7시 기준 19만명을 넘겼다.

금감원은 이렇게 전산에서 주식이 발행돼 팔리는 경우 장중에는 사실상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인 건 맞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장 마감 후 증권사와 예탁결제원이 서로 수량을 맞춰보기 때문에 오류를 당일 내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수조사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고, 증권사들을 조사해본 후 필요할 경우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나성원 안규영 기자 naa@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