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르긴 하지만, 배우 원진아(27)는 올해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데뷔작에서 120대 1 경쟁률을 뚫고 여주인공을 꿰차더니 단번에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 당찬 발걸음은 점점 더 가열하게 속도를 내고 있다.
처음 대중에 얼굴을 알린 작품은 ‘그냥 사랑하는 사이’(JTBC·이하 ‘그 사이’)였다. 지난 1월 말 종영한 이 드라마에서 그는 과거의 아픔을 안고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문수 역을 소화해냈다. 상대역은 이준호(2PM). 둘의 절절한 멜로 호흡이 호평을 낳았고, 원진아는 이 작품으로 제54회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난 원진아는 “촬영 전엔 부담감이 커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감독님, 선배님들과 함께하면서 저를 잘 이끌어주시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많이들 도와주시고 배려해주신 덕에 무사히 작품을 마칠 수 있었다”고 활짝 웃었더랬다.
“제게 ‘그 사이’는 단순히 ‘첫 주연작’이라기보다 ‘인생 공부를 하게 해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만한 대사들이 많았거든요. 나문희 선생님의 대사 중 ‘불행은 그냥 불행일 뿐이다’ ‘우는 소리가 크다고 더 아픈 거 아니다’라는 얘기들을 계속 곱씹게 되더라고요. 배운 게 참 많아요.”
차기작은 곧바로 정해졌다. 오는 7월 방영되는 의학 드라마 ‘라이프’(JTBC)에서 소아과 의사로 변신, 조승우 이동욱 문소리 등 쟁쟁한 선배들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스크린 활약도 이어진다. 올해 개봉 예정인 영화 ‘돈’으로 관객을 만난다. 무려 류준열 유지태 조우진 등과 함께한 작품.
원진아는 “촬영 시기로 따지면 ‘돈’이 ‘강철비’(2017)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었다. 그래서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는데, 화면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가늠할 수 없어 어려웠다. 지금껏 보여드린 모습과 전혀 다른 역할이다. 캐릭터를 이해하기까진 애를 먹었지만 연기하는 건 너무 재미있었다”고 들떠했다.
원진아가 배우의 길로 들어선 건 마치 운명 같은 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끼가 넘쳤던 그는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나서서 장기자랑을 하곤 했다. 중학교 때 호기심에 친구와 연기학원에 다녔는데, 어렴풋이 그때 연기의 재미를 느꼈다. 연기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연기자의 꿈을 안고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집안 형편상 계속 ‘연기를 하고 싶다’고 우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얼마간 꿈을 접었다.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던 어느 날, 부모님이 그를 다시 뒤흔드는 제안을 하셨다. ‘더 늦기 전에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보라’고.
기다리기라도 한 듯 ‘연기를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간절함을 품고 홀로 상경한 원진아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며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학원을 다니기보단 현장에 뛰어들었다. 오디션 사이트를 뒤져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다. 단편영화나 독립영화를 찍으며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배웠다.
“저는 인복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첫 작품 ‘캐치볼’(2015)에서 함께 작업했던 스태프들의 소개로 계속 작품을 할 수 있었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상업영화 오디션을 볼 기회가 주어졌고, 지금의 소속사 대표님을 만났어요. 제가 먼저 청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아 감사할 따름이죠.”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알바 생활을 계속했었다. 여러 일을 해봤지만, 그 중 가장 좋았던 건 극장 아르바이트다.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었기 때문. “사실 연기를 시작한 것도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였어요. 영화관에서 일할 때 제 생애 영화를 제일 많이 봤던 것 같아요. 당시 상영작들은 거의 다 봤죠(웃음).”
원진아는 인터뷰마다 “진심으로 연기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또 한다. 진짜가 아닌 거짓 연기는 금세 들통이 나버릴 것 같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저 ‘연기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점점 생각이 달라졌어요. 사람이 절 보고 ‘가짜로 연기한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을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그는 아주 잠깐 고민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크게 바라는 건 없어요. 단지 꾸준히 작품을 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다작(多作)을 하고 싶다’는 욕심은 아니에요. 중요한 걸 놓치지 않으면서 꾸준히 오래, 연기하고 싶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