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증평 모녀의 비극은 생활고 때문이라기보다 신변 비관이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 살 배기 딸과 숨진 40대 엄마는 사기 혐의로 피소된 것으로 드러났다. 남편과 친정어머니가 잇따라 사망하면서 친정을 비롯해 시댁과 왕래가 끊긴데 이어 경찰 조사까지 받게될 상황에 처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9일 충북 괴산경찰서에 따르면 엄마 정모(41)씨는 올해 1월 중고차 판매 사기 등 혐의로 두 차례 피소된 상태였다. 지난해 10월 증평의 한 야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편의 차량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피소됐다. 차량이 카피탈 업체에 압류된 사실을 모르고 중고차 업체에 차량을 처분한 게 원인이었다. 정씨가 경찰에 출석하지 않아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씨는 지난 6일 오후 증평의 한 아파트에서 세 살 배기 딸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정씨는 침대 옆 바닥에 누운 상태로, 딸은 침대 위에 이불을 덮고 옆으로 누운 상태였다.
현장에서 발견된 정씨 유서에는 “남편이 그립고, 아이도 내가 데리고 가겠다. 동생을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경제적인 어려움 등 생활고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또 정씨 사망 당시 통장에는 256만원이 들어있었다. 그가 은행 등에 1억5000만원 상당의 빚을 진 것으로 확인됐지만 거주하고 있던 임대아파트 보증금 1억2900만원과 2700만원 상당의 차량 3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모녀의 죽음은 아파트 관리비가 3개월째 연체된 점을 이상하게 여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확인됐다. 부검에 나선 경찰은 부패 상태를 고려했을 때 모녀가 3개월 전에 숨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씨가 숨지기 전까지 국민연금과 월 임대료, 세금 등을 밀리지 않고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편함에서 발견된 아파트 월세와 관리비 고지서 등은 정씨가 숨진 이후부터 쌓인 것으로 보인다.
증평군 관계자는 “정씨는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나 차상위계층이 아니었다”며 “국민연금·건강보험료 체납이 없었기 때문에 복지지원 대상자로도 분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는 일정한 직업이 없어 아이를 양육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빚 독촉에 시달리거나 파산할 정도의 빚을 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주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남편과 사별한 후 신변을 비관해 딸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뉴시스에 말했다.
정지용 기자 jy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