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 파문’ 정부 온도차…김동연 “무차입 공매도” 금감원 “공매도 아냐”

입력 2018-04-09 14:44


삼성증권의 우리사주 ‘유령주식’ 배당 파문에 대한 정부 내 엇박자가 나오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유령 주식’ 28억주(약 112조원 규모) 가운데 삼성증권 직원들이 내다 판 501만주를 ‘무차입 공매도’로 보고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지만, 시장 감독 책임을 지고 있는 금융감독원은 이번 사태가 공매도와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현재 삼성증권 시스템 규제와 공매도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명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증권시스템 수술을 위한 경제부처 간 입장 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부총리는 9일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특정 증권사가 허술한 내부시스템 하에서 배당을 잘못했기 때문에 허술한 내부시스템 점검을 분명히 해야 한다”면서 “무차입 공매도는 지금 금지하게 돼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 같은 것들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제도 점검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증권사 직원들이 자기에게 잘못 입고된 주식을 파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며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당국에서 확실히 점검과 조치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부총리는 특히 “이번 사건으로 실질적으로 무차입 공매도가 이뤄진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이와 같은 사례가 또 있었는지 제도적으로 어떤 것이 문제인지 등 분명하게 점검하고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없는 주식을 판다는 의미의 공매도(short selling)는 증권사 등에서 주식을 빌려 파는 차입 공매도와 아예 주식이 없는 상태로 매도하는 무차입 공매도로 나뉜다. 현행법상 무차입 공매도는 금지돼 있지만 삼성증권 주식 배당과 이후 직원들의 매매 과정에서는 정상적인 발행 과정을 거치지 않은 주식이 501만주나 시장에 나와 팔렸다. 결과적으로 삼성증권 주가가 장중 약 12% 폭락하는 결과를 가져와 무차입 공매도 논란이 일고 있다.

반면 금감원에서는 이번 사태를 무차입 공매도보다는 시스템 결함 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김도연 금감원 부원장보는 이날 기자브리핑에서 “수습 과정에선 결과적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처리하는 과정과 유사하게 사고 수습은 됐다”면서도 “그러나 저희는 이번 사고가 공매도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더 심각한 시스템상 오류로 인식하기 때문에 그 부분과 공매도 제도를 연결시키긴 곤란하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삼성증권의 내부 통제 오류(주식배당 입력 오류 미차단), 직원의 도덕적 해이, 주식거래 시스템의 문제 등을 꼽으면서도 공매도와 관련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대형 증권사가 제멋대로 100조원이 넘는 주식을 발행하고, 이 가운데 수천억원 규모의 ‘유령 주식’이 시장에서 거래된 금융사고에 경악하고 있다. 특히 이런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면 공매도를 증권사가 악용해 주가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린 사례가 수없이 많지 않았겠느냐는 의구심이 개미투자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날 오후 2시30분 현재 ‘삼성증권 시스템 규제와 공매도 금지’ 국민청원에는 이틀만에 18만5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청원자는 “삼성증권 총발행주식은 8930만주이며 발행한도는 1억2000만주인데 28억주가 배당되고 501만주가 유통됐다”며 “회사에서 없는 주식을 배당하고, 없는 주식이 유통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렇다면 공매도는 대차 없이 주식도 없이 그냥 팔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니냐”며 “서민만 당하는 공매도를 꼭 폐지해달라”고 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