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비켜 간 학원가… 성폭력 안전지대 아니다

입력 2018-04-09 06:21
뉴시스

여고생, 학원 원장에게 성추행 당해 고소 준비
무용학원서 추행 혐의 원장 징역 4년형 받기도

교육청은 학원 내 성폭력 과태료·벌금… 소극적 대응

고등학생 A양(18)은 지난달 용기를 내 성폭력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2년 전 다니던 학원 원장이 진로상담을 하던 중 어깨와 허리, 엉덩이 등을 만졌다고 털어놨다. 추행은 두 달 동안 이어졌지만 두렵고 무서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 A양이 수사기관에 신고하겠다는 뜻을 밝혀 센터는 변호사 선임과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학교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미투(#SchoolMeToo)’가 확산되고 있다. 8일 청소년성폭력상담소 ‘탁틴내일’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접수된 상담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370여건보다 80여건 늘었다.

그러나 사교육 학원 내 성폭력에 대한 공론화는 속도가 더디다. 학교는 학생들 간의 연대를 통해 문제 제기와 사후 처리가 진행되고 있지만 학원은 관리 사각지대가 많아 피해자 개인이 져야 할 무게가 더 무겁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학원은 학교만큼 위계가 확실하다. 전문가들은 강사와 학생 사이에 학교처럼 일방적인 권력관계가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예체능 계열 입시학원에서는 강사의 영향력이 더욱 절대적이다. 바닥이 좁다보니 가해자인 강사가 문제제기를 할 수 없게 입막음을 하는 일도 벌어진다.

최근 경기도의 한 법원은 자신이 가르치는 무용 전공 고등학생들을 추행한 혐의로 한 무용학원 원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해당 원장은 무용 특성상 필요한 체중관리를 핑계 삼아 학생들을 추행했다. 그러면서 “건너 건너면 다 아는 사이니 말하면 가만 안두겠다”는 등 협박까지 일삼았다. 전형적인 위계·위력에 의한 성추행이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학원에서 성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신고하지 않거나 성범죄 경력을 조회하지 않고 강사를 채용했을 경우 학원 운영자는 300만∼10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교육청은 성 관련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운영자에게 10∼30점의 벌점을 부과할 수 있다. 과태료, 벌점 위주이다 보니 학원 내 성폭력 대응이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교육청에까지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교육청 관계자는 “최근 이슈가 된 이후 아직까지 학원 내 성폭력 신고나 민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학원의 경우 오래 전 발생한 (성폭력) 사안은 학교와 같은 감사팀이 없어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학원 내 성폭력이 없다곤 볼 수 없다. 신문희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부소장은 “학원 선생님에게 피해를 당한 학생들의 상담이 학교만큼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학원이 학교에 비해 성폭력이 묵인되기 쉬운 구조를 가졌다고 꼬집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원은 양성평등과 같은 사회적 규범을 모니터링하기 어려운 공간”이라고 분석했다.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연대집단의 부재도 학원 내 성폭력 공론화를 어렵게 만든다. 학교의 경우 재학생·졸업생 집단이 이 역할을 맡는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이상화 교수실장은 “학원은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을 때 개인이 해결하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학원에도 종합적인 성폭력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구 교수는 “학원도 교육을 책임지는 사회적 주체인 만큼 예방대책을 마련하고 문제가 터졌을 때 성폭력을 전담하는 국가기관으로 연결하는 채널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훈 임주언 기자 hunhu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