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친정엄마 잇따라 사망… 외부와 접촉 끊고 두문불출
우편함에 연체고지서 수북 유서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집 보증금·차량 있었지만 남편이 남긴 빚 독촉 시달려
복지사각지대 발굴 형식적… 郡, 뒤늦게 연체가구 조사
지난해 9월 충북 증평군의 한 민간임대아파트에 사는 A씨(41·여)의 남편과 친정어머니가 잇따라 숨졌다.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친정과 왕래가 끊겼고, 남편이 숨진 후부터는 소원했던 시댁과도 연락이 단절됐다. 외부와도 접촉을 끊고 지냈다. 3개월 동안 10만원 안팎의 아파트 관리비를 내지 못했고 13만원인 임대료도 내지 못했다. 이웃과도 소통이 없었던 A씨를 주목하는 이들은 없었다. 왕래는커녕 전화통화도 거의 없었다. A씨의 전화에 남은 통화목록은 몇 개월 전이 마지막이었고, 그 목록을 바탕으로 경찰이 전화했을 때 연결된 전화는 작은아버지 단 한 명이었다.
A씨는 지난 6일 오후 5시18분쯤 자신의 집 안방에서 딸(4)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침대 위의 딸은 이불을 덮고 있었고 A씨는 그 곁에 누워 있었다. 유서에는 “남편이 숨진 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관리비 연체를 이상하게 여긴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A씨 모녀의 사망은 확인됐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8일 “찾아갔는데 문이 안 열려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A씨의 아파트 우편함에는 카드 연체료와 수도요금·전기료 체납 고지서가 쌓여있었고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도 지난해 12월부터 수도사용량이 0으로 표시돼 있었다.
경찰은 모녀가 적어도 두 달 전 숨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A씨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임대보증금 1억2500만원과 가족 명의의 차량 3대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남편이 사업하면서 진 빚을 갚기 어려워 빚 독촉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4년 전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 후 복지사각지대 발굴 대상자를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A씨는 복지사각지대 대상자가 아니었다. 2015년부터 정부는 2개월에 한 번씩 전기·수도·국민연금 체납 여부 등을 확인해 각 지자체에 명단을 전달하고 있는데 A씨가 살던 아파트는 전기·수도요금과 TV수신료 등이 아파트 관리비에 포함돼 있어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A씨는 이 명단에 없었다.
또 A씨는 아파트 임대보증금 등 재산이 있는 것으로 파악돼 주변에서 어려운 사정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A씨는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나 차상위계층이 아니었다”며 “특히 단전·단수·국민연금 체납 여부 등에서 파악되지 않는 공동주택 거주자는 실태를 인식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나 차상위계층 외에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을 발굴하기 위해 증평군이 지난해 9월부터 운영했던 ‘쏙쏙 통’도 유명무실하긴 마찬가지였다.
증평군은 9일부터 지역 20여곳의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해 3개월 이상 전기료나 수도료가 연체된 가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할 예정이다. 군은 또 자체적으로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와 업무협약을 통해 전기·수도 체납 등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다.
증평=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