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주식발행 ”…삼성증권 배당사고 논란

입력 2018-04-08 15:50
삼성증권 사과문_삼성증권 홈페이지 제공

보통 주식을 발행할 때는 이사회와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 실물 인쇄를 하고 한국예탁결제원 등록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주식이 발행되기도 전에 전산상에 28억 주 숫자가 입력돼 직원들에게 제공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삼성증권은 ‘직원의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삼성증권의 배당 사고를 두고 “삼성증권이 조폐공사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청원에서는 지난 6일 올라온 ‘삼성증권 시스템 규제와 공매도 금지’라는 제목의 청원이 약 12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

◆ 삼성증권은 조폐공사?

삼성증권의 총 발행 주식 수는 8930만주, 발행한도는 1억2000만주이다. 그러나 이번에 직원들에게 배당된 주식 수는 28억주이고 이 중에 직원들이 매도한 주식 수는 501만주이다.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주식 수 보다 31배가 많은 주식이 갑자기 배당된 셈이다.

쉽게 말해 직원들에게 주당 ‘1000원’을 줘야 할 배당금 28억원을 ‘자사주 1000주’로 착각해 112조원을 잘못 배당했다는 얘기다. 이는 삼성증권 시가총액(3조4000억원)의 33배가 넘는 수준이다. 더욱이 이 틈을 이용해 일부 직원들이 장이 열리자마자 매도 물량을 쏟아냈고 주가는 급등락했다. 비정상적인 주식이 들어왔을 때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증권사 직원들이 이를 매도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증권사가 마음만 먹으면 존재하지도 않는 주식을 언제든지 만들어내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다”고비판했다. 증권사가 주식을 마음대로 원하는 타이밍에 찍어낼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정보력이 약한 주주들 입장에서는 ‘눈 뜨고 코 베이는 사태’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증권사가 주식시장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주주들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시장을 조정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주식투자 커뮤니티에서는 “삼성증권은 사실상 조폐공사다”라면서 “지금까지의 공매도도 이러한 형태로 이뤄진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비난했다.

삼성증권 관련 국민청원자가 12만명을 넘어섰다_청와대 홈페이지

◆ 또다시 공매도 논란

삼성증권 일부 직원의 잘못된 배당주식 매도는 공매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금지된 유형의 공매도를 한 상황이어서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공매도는 말 그대로 ‘가지고 있지 않은 주식을 파는 것’을 말한다. 한국예탁결제원이나 한국증권금융 등의 중개기관을 통해 주식을 빌려 매도하는 ‘차입 공매도’는 허용된다. 현재 증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상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주식을 빌리지 않은 채 먼저 팔고 보는 무차입 공매도는 금지돼있다.

삼성증권 배당 사태는 법적으로 금지된 ‘무차입 공매도’에 해당한다. 공매도시 반드시 대차거래를 통한 주식 차입 과정이 있어야 하지만 이 과정이 생략됐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투자자들은 주식시장 시스템 전반에 불신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 삼성증권 배당사고는 공매도라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사실상 공매도는 기관과 외국인만 할 수 있어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 제도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바이오 의약품 제조업체 셀트리온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공매도 폐지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삼성증권이 전산 조작만으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대량의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것이 사실로 확인되자 네티즌들은 “역시 공매도는 개미들을 무시하고 대기업들 자신들의 배 속을 채우기 위한 제도였다”며 맹비난했다.

◆ 공매도가 핵심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공매도가 핵심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삼성증권 사태가 공매도라면 배당된 28억주, 즉 100조를 은행에 한 번에 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이로인해 “그동안 증권사에서 은행처럼 주식 찍어내 시장에 판 것 아니냐”는 의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총발행수보다 31배 많은 주식이 새로 만들어지고, 시장에 유통되는 과정이 ‘눈 깜짝할 새’이뤄졌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개미’로 일컬어지는 소액주주들의 이익과 직결된다. 증권사마다 ‘유령주식’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증권사 자신들은 돈 한 푼 안 드리고 시세조작에 관여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실제 주주들의 거래량이 없어도 증권사마다 유령주식으로 시세조작을 해 개미들이 이익을 볼 수 없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미들은 손해를 보고 만다.

결국 “주식시장 자체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개미들은 결국 나가떨어진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편 금융당국은 8일 오후 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삼성증권의 배당착오 처리 경과와 원인과 시스템 점검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른 증권사들도 유령주식 발행과 유통이 가능한지 시스템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박재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