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부모에게 욕하는 아이

입력 2018-04-07 08:08

K(가명)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다.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하던 아이였다. 그러나 초등학교 6힉년 부터 조금씩 하던 컴퓨터 게임을 중학교에 와서는 자제하지 못하고 빠져들었다. 최근엔 밤을 세워 게임을 하다가 아침에 등교를 하기 어렵고 잠을 깨우는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게임을 그만하라고 하면 몹시 화를 냈다. 심지어 욕을 하거나 밀치고 폭행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심하게 대드는 아이를 아버지가 손찌검을 하게 되니 화가 난 K는 집을 나가버리기도 하였다. K는 지능이 최우수 수준으로 높았고 어려서는 모 기관에서 영재 판정 받고 영재 교육까지 받아왔다. 부모를 비롯해서 친척들과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문제없이 자라는 듯이 보였지만 기질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행동이 자유분방한 아이였다. 반면 아버지는 매우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며 엄격한 사람이었다. K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참지 못하고 시도해 봐야하는 아이여서 튀는 행동을 하는 적도 많았다. 아버지는 이런 K의 특성을 이해해주기 보다는 야단쳤고 아이를 통제 못한다면 아내를 나무랐다. 그리고 남편의 권위를 세우며 일방적인 강요를 하는 건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어린 시절을 보낸 어머니는 받아들일 수 없어 결혼 초에는 많이 다투기도 하고 이혼도 고려했지만 지금은 포기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했다

남편에 대한 어머니의 불만은 점점 부부사이를 멀어지게 했다. 그럴수록 어머니는 아들인 K에게 정성을 기울였다. 먹는 것, 입는 것은 물론이고 공부를 시키는데도 최선을 다했다. 어딜 가서나 아이의 명석함을 인정받았다. 어머니는 고무되고 남편 때문에 바닥으로 떨어졌던 자존감이 보상되는 듯했다. 아이만큼은 최고로 키우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는 아이도 잘 따라 주었고 힘들어한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는 달랐다. 놀기도 좋아하고 활발했던 K는 영재고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학원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새벽에야 집에 들어오곤 했는데 몹시 힘들었다. 하지만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고, 또 무섭기도 해서 말을 하지 못하고 부모님 몰래 PC방에 조금씩 다니기 시작했다다. K는 차츰 학원보다는 PC방에 있는 시간이 많아 졌다. 하지만 어머니는 남편이 비난이 두려워 혼자 해결하려고 끙끙 앓았다.

K는 사춘기 이후에 “아버지와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니 역시 설교가 길어서 짜증이 났으며, 따라다니며 잔소리하고 다른 아이와 비교를 해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그래서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도 됐다고 말했다. 순간 자제하지 못한 자신이 미워지고 자책을 하게 되기를 반복했다. 차츰 아이는 표정이 없어지고 활발하고 호기심에 가득한 표정은 온대간데 없어졌다.

K의 가족은 너무 경직된 관계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매우 흔한 유형이다. 규칙이나 규율에 대해선 지나치게 엄격하고 위계 질서에만 매여 있다. 하지만 이런 경직된 위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부모에게 욕을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권위적이던 아버지는 K의 가출에 화들짝 놀라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K의 의견, 생각도 경청하려고 노력 중이다. 또 아내와의 친밀함을 만들어 가려고 아내에게 꽃을 선물하기도 했다. 남편과의 관계가 나아지면서 당연히 어머니는 K에 집착해 졸졸 따라다니면서 잔소리하는 일이 줄었다. 이렇 듯 가족 구성원 중 한명의 일탈이 정상화되면서 건강한 관계를 찾는 돌파구가 되는 사례가 많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