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42분’ 물도 안 마시던 김세윤 판사가 멈칫한 이유

입력 2018-04-06 20:45 수정 2018-04-07 05:34
사진=YTN 방송화면 캡처

법원이 6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원을 선고한 가운데,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을 총괄한 김세윤 부장판사가 TV 생중계를 고려해 법률 용어를 쉽게 풀어서 유무죄 판단이나 양형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제3자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해 삼성그룹 승계작업을 설명하면서 “말이 어려운데”라며 혼잣말을 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김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2시10분 판결문 원본을 요약한 별도의 발표문을 들고 법정에 나섰다. 역사상 처음 생중계되는 형사재판 1심 선고를 국민이 낯설게 느끼지 않도록 작성된 ‘쉽게 풀이한’ 판결문이었다. 사법부는 다소 생소한 법률 용어에 국민이 불편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 단어 선택에도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김 부장판사는 판결 내내 직권남용죄 등 법적 용어를 ‘겉으로 보기에는 공무원이 자신의 직권을 행사하는 모양새, 외관이라고 합니다’라는 식으로 풀어서 설명했다.

특히 김 부장판사는 이날 영재센터, 미르, K스포츠재단 지원 관련 제3자 뇌물수수 부분에 대해 판결을 내리면서 ‘승계작업’이라는 용어를 쉽게 풀어서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 부분은 승마지원 관련 뇌물수수 부분과는 달리 제3자 뇌물수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가 성립하려면 부정한 청탁이라는 요건이 추가로 필요합니다”라며 “그래서 검찰은 부정한 청탁의 대상인 이재용의 현안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선 이재용이 최서원의 개인자금을 사용해서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들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하여 사실상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개편…”이라고 말하다 잠시 멈췄다.

김 부장판사는 곧이어 “말이 어려운데 즉 이른바 승계작업을 승계작업을 포괄적 현안으로 구성하고 구성하는 개별적 현안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의 합병 등 현안이 있고 그 외에도 개별 현안으로 바이오매스 현안이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최대한 쉽게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찾아온 시민들이 6일 이곳에서 생중계된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선고공판을 종합민원실 앞에 설치된 텔레비전으로 지켜보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이날 재판부는 뇌물 혐의의 대표적 사건인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한 대기업 출연 강요와 관련해 “명시적 협박이 없었어도 기업에 강요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강요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한 혐의 역시 “박 전 대통령이 퇴진토록 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KT에 최순실씨 지인을 채용하고 그의 요구에 따라 광고를 하도록 강요한 혐의도 인정했다. 롯데그룹이 제공한 ‘70억원’에 대해선 제3자 뇌물수수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을 통해 최순실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대거 유출한 것도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관련된 혐의에 이르러 무죄 판단이 나왔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삼성 측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관련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언론에서는 당연히 경영권 승계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법정에서는 아주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며 “법정에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승계작업에 대한 개별현안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이 주장하는 개별현안에 대해선 “묵시적 명시적 부정청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데 그 이후 ‘포괄적 현안’이 있었다고 보는 것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며 “피고인과 이재용 사이에 승계작업과 관련해 영재센터,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지원 관련 뇌물수수 및 청탁은 무죄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부장판사는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등 국정농단 핵심 피고인 13명 사건을 심리하는 등 지난 1년5개월간 국정농단 재판에 전념하고 있다.

1967년 서울 출생인 김 부장판사는 서울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93년 제3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25기) 수료 후 서울고법 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 등을 지냈다. 김 부장판사는 차분한 소송 지휘와 진중한 언행으로 법원 안팎에서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2014년과 지난해엔 각각 경기·서울지방변호사회가 선정한 우수법관에 올랐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