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박근혜 ‘블랙리스트’ 지시·공모 인정 “평등 원칙과 헌법에 반한다”

입력 2018-04-06 16:41
왼쪽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뉴시스

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개입 혐의에 대해 유죄라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6일 오후 2시10분부터 열린 박 전 대통령 1심 선고 공판에서 “문화·예술계 인사 지원배제에 대해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진과 공모해 직권을 남용하고 권리행사 방해 및 강요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장관 등과 진보 성향의 문화·예술인과 단체에 대한 지원을 배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어떤 보고도 받지 않았고 지시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개입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청와대 직원 증언과 수석비서관회의 자료 등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이 진보 성향 예술계 인사들의 지원을 배제했다는 주요 보고서를 보고 받은 것, 이런 보고를 받고도 중단을 지시하지 않은 것이 인정된다”고 했다. 이어 “지원배제 대상에 정부와 다른 이념성향을 가졌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개인·단체가 다수 포함됐다”면서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지원을 배제하는 것은 평등 원칙과 헌법에 반하고 위법한 조치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문예진흥기금 심의에 대한 부당개입 등 일부 혐의에 대해 검찰의 증거만으로는 산하기관 임직원이 의무가 없는 일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이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과 2급 공무원 3명의 사직을 강요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노 전 국장에게 징계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있다고 해도 의사에 반해 면직당하지 않게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의 사직을 강요한 것은 직권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2급 공무원 3명의 사직 강요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이) 사표를 받으라 지시하거나 승인해 공모한 것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말했다.

앞서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전 장관 등의 재판에서 1심은 박 전 대통령의 공모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가 항소심이 인정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 캐비닛에서 발견된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자료 등을 근거로 지원배제 방안 등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봤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