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유공자 인정 못받고 숨진 유호철 대위…유족들의 '외로운 싸움'

입력 2018-04-05 15:16 수정 2018-04-05 15:23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군 복무 중 기준치의 5배가 넘는 석면에 노출돼 폐암 진단을 받은 유호철 예비역 대위가 지난달 26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 군 시절 작업 환경과 폐암의 연관성을 규명하기 위해 국방부와 소송전을 벌였으나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 신청을 기각했다. 국방부가 유 대위의 질병이 공무로 생긴 것이 아니라며 공상 처리를 해주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방부를 문책해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5일 한 네티즌이 한 커뮤니티에 자신을 유 대위의 유가족이라고 소개하며 장문의 글을 올렸다.


유 대위의 사촌형이라는 A씨는 “참 착한 아이였다. 치매 걸린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며 할아버지의 변도 손수 치우며 불평안하는 정말 착한 아이였다”며 갑작스런 폐암 발병으로 힘든 몇년을 지내다 고인이 됐다. 그렇게 세상과 이별을 해서는 안 되는 아이였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병마와 싸우던 동생이 웃대(웃긴대학)에 글을 남기며 고통을 잊으려 노력했다. 실제로 많은 위로가 된 것 같아 한편으로나마 위안이 된다”고 동생에게 응원을 전해준 네티즌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그 기억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가며 서서히 자연스레 잊혀질 것”이라며 “호철이를 기억하는 분들은 청와대 청원으로 호철이를 기억해주시기 바란다”고 유 대위의 질병이 공무로 생긴 것이 아니라며 공상 처리를 해주지 않은 국방부를 문책해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호철이는 이미 고인이 됐지만, 다시는 호철이와 같은 고통을, 아픔을, 남게 된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꼭 20만명의 청원을 넘게 해주시기 바란다”며 “군의 잘못된 행동과 사후 처리에 경종을 울리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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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대위는 2014년 8월 기침과 가슴 두근거림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고, 폐암4기하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폐암에 걸릴 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는 술, 담배도 하지 않았고, 폐암 가족력도 없었다.

폐암 선고를 받은 유 대위는 석면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그는 2008년 통신병과 소위로 임관해 폐암 진단을 받을 때까지 7년 가까이 낡은 막사나 건물 천장을 제거하고 통신 선로를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일주일에 많게는 5회에 걸쳐 석면이 들어간 천장 마감재를 뜯고 전기선, 통신선을 설치하거나 보수했다.

군 건물 천장과 벽 내장재에는 석면이 많이 쓰인다. 석면은 폐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져 세계보건기구는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석면이 1% 이상 들어간 건축물은 철거하게 돼 있다.

하지만 군은 유 대위에게 석면의 위험성에 대한 어떤 교육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방진마스크 등 석면에 대한 보호 장비도 지급하지 않았다. 노후한 마감재에서 석면 먼지가 뿜어져 나왔지만 그를 지키는 건 자비로 산 일반 마스크뿐이었다.

유 대위는 2015년 1월 ‘폐암에 의한 심신장애’로 전역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석면 때문에 폐암에 걸린 것이 아니라며 상이연금 지급을 거부했다. 석면으로 인한 폐질환은 보통 10년 이상 잠복기를 거치는데 유 대위의 경우 기간이 짧다는 이유였다. 평소 건강했고, 폐암 가족력이 없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는 유 대위의 주장은 정확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진=뉴시스

이에 유 대위는 국방부를 상대로 ‘상이연금 지급거부 취소 소송’을 냈다. 그는 항암치료로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근무했던 부대 건물의 천장 마감재를 수집하고, 관련 연구자료를 찾아 다닌 끝에 지난해 6월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김종대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유 대위는 2015년 3월부터 3년 동안 수많은 행정절차와 세 차례의 소송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보훈처는 두 번에 걸친 국가유공자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국방부를 상대로 승소한 판결문도 제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유 대위는 끝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숨진 유 대위의 외로운 싸움은 이제 유가족의 몫이 됐다. 지난 4일 부인 김모씨는 유 대위가 보훈처(서울지방보훈청)를 상대로 제기했던 국가유공자(공상군경) 등록거부 처분 취소 소송의 변론을 참관하기 위해 법원을 찾았다. 그는 “혹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라는 판사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유가족들은 ‘유공자 유족으로 인정해달라’는 별도 소송을 새로 제기해 처음부터 다시 싸워야 한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석면 관리를 소홀히 하고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국방부를 문책해야 한다며 분노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고 유호철 대위님을 죽음으로 몬 국방부를 문책합니다’라는 청원이 1일 등록됐다. 5일 현재 이 청원에는 3만4000여명이 참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고 유호철 대위님을 죽음으로 몬 국방부를 문책합니다’라는 청원이 1일 등록됐다. 5일 현재 이 청원에는 3만4000여명이 참여했다. 사진=국민청원 게시판 캡쳐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