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강남구 라움 갤러리홀에서 열린 ‘북녘 어린이 재활병원 건축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에서 스티븐 윤 박사는 이렇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윤 박사는 2007년부터 아내 조이 윤과 함께 평양의학대학에서 아이들을 치료해왔다. 2012년 부족한 병동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복신이의 죽음을 계기로 척추재활센터 건설을 시작했다. 총 예산 33억원의 공사. 미국 등 해외 후원으로 지금까지 21억원을 모았지만 한국에선 후원받기가 쉽지 않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등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이어지면서 주변에선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윤 박사는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바른 때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난해 8월 미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평양에서 미국인들이 철수하고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병원 건축은 더욱 더디게 진행됐다. 그러던 중 올 초 국제푸른나무 곽수광 대표가 후원의 밤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국민일보 보도(2018년 3월 21일 25면)로 윤 박사의 사역과 후원의 밤 행사가 알려지면서 여러 곳에서 마음을 보탰다. 목표했던 2억원을 조금 넘는 금액이 모였다. 준비한 200석이 채워질까 걱정했지만 230여명이 홀을 가득 채웠다. 지난 5년간 공사로 병원 건물은 지어진 상태다. 이제 추가로 10억원을 모금해 내부 공사와 함께 의료 자재와 설비까지 갖추면 본격적인 진료를 시작할 수 있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40년간 서울대에서 외교에 대해 연구하면서 외교를 통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원심력만 줄이면 통일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원심력만큼이나 북한 사람들과 남한 사람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구심력이 강하게 존재해야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거의 구심력이 제로인 상태에서 올 초부터 국면이 바뀌며 구심력을 강화할 계기가 마련돼서 다행스럽다”고 덧붙였다. 이어 윤 전 장관은 “우리의 작은 마음이 전달돼서 센터가 완공되고, 전문의 수련과정까지 완성돼 북한 전역에 재활센터가 만들어져 복신이 같은 아이가 더 이상 생기지 않게 될 때, 선물처럼 통일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윤 박사의 아내 조이 사모는 다소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미국인인 그는 1970년대 평택과 천안 지역에서 선교사로 지냈던 부모를 따라 15년간 한국에서 살았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10년째 평양에서 북한 어린이들을 돌보는, 누구보다 한반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어떤 분들은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에 대한 마음을 갖고, 또 나라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향한 염원으로, 어떤 분들은 윤 박사의 마음에 설득당해 오셨을 것”이라며 “오늘 이곳에 모인 이유와 동기는 모두 달라도 결국 사랑이 있기 때문에 모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지만 오직 사랑만이 영원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라며 “우리의 사랑이 북녘에 꼭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후원자들을 위해 무대에 오른 팝페라그룹 ‘컨템포디보’는 ‘그리운 금강산’을 불러 참석자들의 갈채를 받았다. CCM 아티스트 송정미는 ‘샬롬’과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등의 찬송을 불러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교류하고, 더 이상 북한에 치료를 못 받는 아이들이 없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윤 박사와 조이 사모는 조만간 중국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간다. 윤 박사는 “복신이 한 사람으로 인해 이제 평양의학대학에선 뇌성마비를 입원할 수 있는 진단명으로 인정받게 됐고, 병원의 어떤 의사도 ‘애들 고생시키지 말고 그냥 빨리 죽게 하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됐다”며 “북한에서도 가장 힘들고 외로운 삶을 살다 간 복신이로 인해 짓게 된 척추재활센터를 완공해 많은 북한의 아이들이 치료받을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