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정착한 ‘소길댁’ 이효리는 살고 있는 땅에서 70년 전 벌어졌던 비극을 세 수의 시로 위로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슬픔과 미안함을 눌러 담아 한 구절 한 구절을 침착하게 읊어 내려갔다. 제주 4·3 사건 희생자 유족 사이에서 연예인의 추도식 참여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오랜 세월 망자와 유족의 상처를 외면한 후회만은 주와 객을 구분하지 않았다.
이효리는 3일 제주 봉개동 평화공원에서 열린 4·3 사건 희생자 70주기 추모식에서 국민의례에 앞서 동백꽃이 놓인 단상에 섰다. 동백꽃은 제주 4·3 사건을 상징한다. 이효리는 2000년 전·후 한국 대중문화를 선도했던 K팝의 원조 격 스타다. 지금은 제주도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2013년 9월 기타리스트 이상순과 결혼해 제주도 소길리에 신혼집을 짓고 정책했다. 제주는 그의 고향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서울의 화려한 밤을 그리워하는 ‘육지사람’이다.
그의 추모시 낭송을 놓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며 울분을 터뜨린 사람도 있었다. 희생자 유족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이효리 팬카페에 그렇게 적었다. 이효리는 이런 지역 여론을 의식한 듯 무거운 표정으로 단상에 섰다. 오랜 세월 슬픔을 억누르고 살아왔을, 이제는 얼마 남지도 않은 희생자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그에게는 이웃이다. 그는 가장 먼저 이종형의 ‘바람의 집’을 낭독했다.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섬, 4월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도입부)
이종형은 제주작가회 회장이다. 지난해 12월 펴낸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에 이 시를 담았다. 이효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추도사를 앞두고 이산하의 ‘생은 아물지 않는다’를 낭송했다.
“평지의 꽃, 느긋하게 피고, 벼랑이 꽃, 쫓기듯 늘 먼저 핀다.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베인 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 벤다.” (전문)
이효리는 마지막으로 김수열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를 낭송했다.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고 미래를 말하는 시다. 이효리가 시를 낭송하는 동안 작곡가 김형석이 배경음악을 연주했다.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천둥 번개에 놀라 이리 휘어지고 눈보라 비바람에 쓸려 저리 휘어진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나이테마다 그날의 상처를 촘촘히 새긴 나무 한 그루 여기 심고 싶다. (중략) 내일의 바람을 열려 맞는 항쟁의 마을 어귀에 아득한 별의 마음을 노래하는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