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이토록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다가 자신이 폐암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자신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병을 얻게 됐다고 짧게 글을 남겼습니다. 제 일처럼 가슴 아파하면서 위로하는 다른 회원들에게 장난을 치면서 꼭 이겨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했고, 회원들은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생전 원했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A씨는 2년 전쯤인 2016년 6월 23일 커뮤니티 사이트 ‘웃긴대학’에 폐암에 걸린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굴곡진 삶을 살았지만 이제 좀 살만해진 자신에게 암이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내가.. 중학교때까진 평범했어
아버지는 중소기업 사장이셨고....
중학교 1학년때..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심...
2년인가 있다가 다시 사업시작하셨는대..
그 와중 치매걸린 할아버지 2년간 집에서 모심
(... 우리아버지가 막내...)
그러다가.. 대학교2학년때 아버지 뇌졸중으로 쓰러지심...
대학교 3학년때... 아버지 돌아가심...
학비문제도 있고.. 그래서.. 장교로 군에감....
물론 .. 회사는 망하고 아버지 빚쟁이들이 병원으로 맨날 찾아옴...
어머니도 파산신청해서.. 어느정도 이제 좀 살만한가 하고
결혼도했는데..
ㅅㅂ... 이제는 내가 폐암4기네..
나 도대체 전생에 지구를 멸망시킨 소행성쯤 되는 색히냐..
무슨 인생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냐...
이쯤에서 뭐가 더 터져야.. 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 ( 아이디 작전주식의신이 올린 글 전문)
그는 올해 3월까지도 이 커뮤니티에 병의 진행 과정이나 일상 생활 등의 이야기를 자주 올렸습니다. 웃대인(웃긴대학 회원을 칭하는 말)들은 그의 소식을 늘 반겼고, 응원했습니다. 그러다가 A씨의 글이 끊겼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회원이 아이디 등을 수소문해서 그가 최근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를 회원들에게 알렸는데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인은 평소 유머를 즐겼습니다. ‘폐암 4기’ 소견을 알린 글에 한 회원이 “기도하겠다”고 위로하자 그는 “드립 좀 쳐달라”는 답글을 달았습니다. 비극을 개그로 이겨내겠다는 그만의 노력이었을 겁니다.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린 글에는 며칠 만에 500개에 육박하는 추모 댓글이 달렸습니다. 또 그의 과거 글은 회원들의 추천을 많이 받아 메인 페이지 등에 노출됐습니다. 이 역시 회원들이 고인을 기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육군 장교로 일했던 A씨는 군시절 자신의 작업 환경과 폐암이 연관 관계가 있다는 것을 규명하기 위해 국방부와 싸웠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오랜 기간 복무했지만 병을 얻은 뒤 의병 전역했습니다. A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웃긴대학에는 A씨가 생전 인터뷰와 함께 ‘공상을 인정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 페이지 서명 독려 글과 댓글이 이어지고 있네요.
그가 2년 전 올렸던 폐암 발병기에는 오늘도 “명복을 빈다”는 추모 댓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폐암 4기를 마치시고, 행복 1기를 다시 시작하라”는 한 웃대인의 말처럼 그곳에서 행복하길 기도드립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