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남측 예술단을 만난 자리에서 ‘농담’을 했다. 우연찮게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도 남측 기자들 앞에서 ‘농담’ 섞인 발언을 내놨다. 김정은 위원장의 농담은 ‘김정은’을 소재로 했고, 김영철 부장의 농담에는 ‘천안함’이 담겼다.
모두 아주 우호적인 취지로 나온 말이었다. 김 위원장은 남북 문화교류를 계속 이어가자는 뜻에서, 김 부장은 남측 취재진의 불편에 사과하면서 ‘윤활유’처럼 농담을 꺼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농담에는 대북 소식통의 ‘해석’이 뒤따랐다. 발언의 의미를 묻는 서울의 기자들이 잇따라 질문을 던지자 각각에 대해 짤막한 분석을 내놨다. 김정은 위원장의 농담에는 “북한식 유머”라고 설명했고, 김영철 부장의 발언에는 “친근감을 쌓기 위한 차원의 말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같은 말을 쓰기에 통역이 필요 없는 남북한 사이에서 이날은 누군가가 ‘통역사’ 역할을 해야 했다. 평양과 서울의 거리가 올 들어 부쩍 가까워졌지만, 함축적인 농담이 전달되기엔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아직 복잡하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 김정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하겠다(?)”
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의 단독 공연 ‘봄이 온다’를 관람한 후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말을 잘해서 이번엔 ‘봄이 온다’고 했으니 이 여세를 몰아 가을엔 ‘가을이 왔다’고 하자”며 “이런 자리가 얼마나 좋은지 문 대통령에게 전해달라”고 말했다고 한 출연자가 전했다. 김 위원장은 “내가 레드벨벳을 보러 올지 관심들이 많았는데, 원래 3일 공연을 보려고 했지만 다른 일정이 생겨 오늘 왔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평양 시민들에게 이런 선물 고맙다”면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하겠다”고 했다. 본인이 본인 이름을 언급하며 남측 예술단 공연에 만족감을 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북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가을이 왔다’ 공연을 하자는 말을 문 대통령에게 전해 달라고 하면서 본인도 북측 최고지도자에게 전하겠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라며 “북측 방식의 유머”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초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북특별사절단과의 만남에서도 먼저 ‘셀프 디스’ 농담을 건네며 대화를 주도한 적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김 위원장이 우리 언론이나 해외 언론을 통해 보도된 자신에 대한 평가와 이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평가나 이미지에 대해 무겁지 않은 농담을 섞어 여유 있는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로켓맨’ ‘뚱보’ 등 자신을 조롱하는 말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는 얘기다.
◇ 김영철 “제가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행보도 놀라웠다. 그는 2일 오전 10시(한국시간, 평양시간 오전 9시30분) 평양 고려호텔에서 남측 기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대뜸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전날 동평양대극장 공연 당시 남측 취재진의 취재와 방송 카메라 촬영이 원활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사과를 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그가 처음으로 ‘천안함’을 언급한 것이다.
김 통전부장이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 맞춰 방남했을 당시 보수야당은 “천안함 폭침 주범의 폐회식 참석”이라며 극렬히 반대했다. 당시 그는 숙소 안에서만 머물며 외부에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때문에 이날 김 통전부장이 천안함을 언급한 것은 이런 사정을 감안해 기자들에게 친근감을 표시한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 통전부장은 “남측 기자들에게 자유롭게 취재하고 편안하게 촬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취재를 제약한 건 잘못된 일”이라며 “제가 먼저 북측 당국을 대표해서 이런 일이 잘못됐다는 걸 사죄라고 할까,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다. 북측 고위인사가 이런 식의 사과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부장은 “혹시 어떤 불편한 점이 있어 마음이 내려가지는 않았는지”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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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공연공동취재단,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