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비닐 수거 거부? 재활용 시장 자체가 붕괴했다”

입력 2018-04-02 05:58
비닐·스티로폼 '수거중단' 첫날인 1일 서울 관악구 한 아파트에서 비닐류 쓰레기들을 여전히 수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최현규 기자

중국 폐기물 수입 중단에 판로 막히고 처리비용 많아
업체 “비닐, 배출 기준 안따라 전체 쓰레기까지 재활용 못해”
친환경 비닐 사용 확대 등 장기 대책 수립 서둘러야

“폐비닐 수거 거부가 문제가 아니다. 쓰레기 재활용 시장 자체가 붕괴하고 있다.”

인천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1일 수도권 지역의 ‘폐비닐 쓰레기 대란’이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폐비닐, 스티로폼, 페트병만이 아니라 플라스틱과 종이 분리수거도 포화 상태”라며 “환경부가 이 문제를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폐비닐 쓰레기 대란은 주민들이 내놓은 쓰레기 수준의 폐비닐을 수거해 돈 주고 처리해야 하는 쓰레기 처리업체들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그러나 재활용 쓰레기 처리에 대한 시스템과 인식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사태라는 게 관련 업계 종사자 및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수도권매립지 인근에 위치한 D업체 J대표는 “폐비닐이나 스티로폼 수거 중단 문제는 갑자기 튀어나온 사건이 아니다”라며 “수년 동안 재활용 수거업체들이 처리기준에 맞게 쓰레기를 분리 배출해 달라고 요구해 왔음에도 관청이나 아파트관리사무소, 입주자가 이를 외면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단지의 경우,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기준대로 분리 배출을 해도 한 사람이 규칙을 지키지 않고 음식물이 섞인 폐비닐을 내 놓으면 전체 쓰레기를 재활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J대표는 “깨끗하게 배출된 쓰레기는 처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쓰레기는 처리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며 “그동안은 쓰레기 배출 품질이 나아지겠지 하면서 견뎌왔는데 지금은 시장경기가 너무 안 좋아져서 우리가 안고 갈 수 있는 시기가 지났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재혁 충남대 교수도 “중국이 재활용 폐기물 수입을 반대하고 있어서 국내 재활용업체들의 판로가 막혔다”면서 “업체 입장에선 처리 비용도 많이 들고 판로도 막히니까 굳이 수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폐비닐 등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은 관계 법령상 분리배출 대상 품목이기 때문에 이물질 등으로 인한 오염 제거가 어려운 경우가 아니면 종량제 봉투로 배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상황반을 꾸려 쓰레기 수거 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마련 중”이라며 “재활용 업체들이 원래대로 비닐과 스티로폼을 수거할 수 있게 독려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쓰레기 대란을 계기로 재활용 쓰레기의 수거 등 유통에 대한 공공의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재활용을 위한 정교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천 계양구 계산택지 내 한 아파트단지 관리소장은 “현장에서 겪는 폐비닐 분리 배출의 어려움이 크다”며 “폐비닐 등의 재활용은 국가적 차원의 자원 순환이 목적이므로 주민이나 업체에 떠넘기지 말고 국가가 나서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지난주 목요일 쓰레기 분리수거로 곤욕을 치렀다는 경기도 고양시 박영아(45) 주부는 “수거업체가 폐비닐을 안 가져간다면 결국 지방자치단체가 수거해서 파묻거나 소각해야 할 텐데 자원 재활용 시대에 역행하는 것 아니냐”며 “정부가 썩는 비닐 개발, 친환경 비닐 사용 확대 등 장기적으로 친환경적인 폐비닐류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정창교, 고양=김연균, 손재호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