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또 현대판 노예’ 농가·축사서 나흘 새 3명 구조… 하루 12시간 중노동, 위생도 엉망

입력 2018-04-01 21:17
충남의 한 하우스 농가에서 15년간 무임금으로 일하던 박태진씨가 생활하던 낡은 건물. 충남=김지애 기자


10년 넘게 일하고도 임금 거의 못받아

씻기 힘들고 난방 안 되는 숙소서 생활

“아픈데 일 시킨다” 이웃이 제보하기도


충남의 농가와 축사에서 나흘 새 3명의 ‘현대판 노예’ 피해자가 구조된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올해 초 경북 농가와 서울 잠실야구장 등에서 현대판 노예 피해자가 발견된 지 두 달도 채 안된 시점이다(국민일보 2월 5일자, 3월 12일자 1면 참조). 최소한의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극심한 인권침해로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충남과 세종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지난 20일과 21일, 23일 충남의 농가와 축사에서 10년 넘게 일하고도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한 50대 남성 2명과 60대 남성 1명을 각각 긴급구조 조치했다고 밝혔다. 세종시 옹호기관은 접근성을 고려해 충남 지역 사건을 이관받아 조사했다.

피해자들은 농가와 축사 등에서 상추를 재배하거나 가축을 돌보는 등 각각 10∼21년씩 쉬는 날 없이 일했다. 하루 평균 13시간 정도 일했지만 늦은 밤까지 작업이 계속되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한 피해자는 “몸이 많이 아픈 것 같은데도 계속 일하고 있다”는 주민 제보로 구조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구조 당시에도 농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다른 피해 사건처럼 이들 역시 ‘임금’이란 게 있는지 모를 정도로 열악한 대우를 받았다. 한 피해자는 15년간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나머지 2명은 장기간 임금을 받지 못했으나 최근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중 1명은 10년 이상 일하고도 통장에 입금된 임금이 80여만원에 불과했다.

주거 환경도 온전치 못했다. 한 피해자는 씻을 곳도 충분치 않은 축사 옆 허름한 건물에서 지냈다. 다른 피해자 1명은 냉난방 시설이 없는 컨테이너박스에서 살았다. 농가에서 지낸 1명만 상대적으로 나은 환경에서 거주했다.

피해자 3명 중 2명은 지적장애 등급을 갖고 있었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이도 2명이었다. 충남 장애인옹호기관 관계자는 “피해자 모두 오랜 기간 비위생적 환경에 노출되며 노동력을 착취당했고 신분증마저 말소된 상태라 병원은커녕 일상생활을 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며 “단순히 장애인 노동력 착취가 아닌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두 기관은 피해자들을 구조해 보호기관에 위탁하고 이들 사건에 대한 조사와 수사를 관할 노동청과 수사기관 등에 의뢰했다.

지적장애 3급 65세
10년 넘게 농작물 재배·납품… 그간 받은 임금 80만원 그쳐

주민증 말소된 57세

하루도 쉼없이 하우스 농사… 돈 한 푼 못받고 통장도 없어

지적장애 2급 58세

돼지농장서 21년간 일해… 2014년 이후 월 30만원 받아


‘현대판 노예’ 피해자 3명이 나흘 새 충남의 시·군 농가와 축사에서 연이어 발견된 것은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이 여전히 낮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최소 10년 넘게 노동력을 착취 당해온 피해자들이 연쇄 발견된 건 이례적이다.

돼지축사에서 20년간 노동착취를 당한 이성철씨가 살던 컨테이너 내부. 충남=김지애 기자


이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구조됐지만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 지내며 장기간 노동력을 착취당하고도 제대로 된 임금조차 받지 못한 것은 동일했다. 적절한 치료도 이뤄지지 않아 아픈 몸을 이끌고 논에 나가 일한 피해자도 있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경북 농가 피해자, 서울 잠실운동장 피해자 사건 보도 후 장애인 옹호기관에 관련 제보가 이어지면서 발견됐다.

지적장애 3급인 김영훈(가명·65)씨는 지난달 20일 충남 A군에서 일하다 구조됐다. 지역주민이 ‘아픈데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남성이 있다’고 면사무소 직원에게 제보한 게 계기였다. 면사무소 직원은 현장 조사를 마친 뒤 충남 옹호기관에 신고했고 이 기관은 면사무소 직원이 모은 자료를 토대로 김씨 구출에 나서 긴급 구조에 성공했다.

옹호기관은 김씨가 충남 농가에서 10년 이상 지내며 벼농사 등 농작물 재배를 했다고 설명했다. 재배한 농산물을 박스에 포장하고 납품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주말도 없이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했다. 발견 당시에도 아픈 몸을 이끌고 비료포대를 나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받은 임금은 80여만원에 불과했다.

김씨는 축사 옆의 작은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불은 오래돼 누렇게 변색돼 있었고 축사 옆이어서 쾌쾌한 냄새가 방 안에 진동했다. 기관 관계자는 “전체적인 위생상태가 나쁠 뿐 아니라 씻을 곳도 마땅치 않은 곳이어서 위생적으로 걱정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건강도 성치 않았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인지 깡마른 김씨는 어깨와 치아에 통증을 호소했다. 기관은 그를 구조한 뒤 병원 치료를 받게 하고 있다. 그는 낯선 이와의 접촉을 극히 꺼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1일에는 충남 B시에서 박태진(가명·57)씨가 구조됐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박씨는 농가에서 상추 깻잎을 재배하는 하우스 농사를 하고 재배한 농산물을 차에 싣는 일을 했다. 그는 본보 취재진에 “아침 6∼7시부터 밤늦게까지 하우스 농사를 지으며 일했다”며 “쉬는 날은 딱히 없었다”고 했다. 한 마을 주민은 “박씨가 밭에 뭘 심기도 하고 농사에 관련된 이런저런 일을 다 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그러나 언제 일을 시작했는지는 10년이 넘었다는 것 외에는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했다. 옹호기관은 15년가량 이곳에서 일한 것으로 추정했다.

박씨는 그동안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고 임금 통장 자체도 없었다. 그는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며 “알아서 나중에 줄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임금을 달라고 요청하진 않았지만 하루 5만원 수준으로 알고 있었다”고도 했다. 집도 허름했고 화장실 위생 상태도 열악했다.

이성철(가명·58)씨는 지난달 23일 충남 C시의 돼지 농장에서 구출됐다. 이씨 역시 지역 주민이 옹호기관에 ‘수십년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한 남성이 있다’고 제보하면서 긴급 구조조치가 진행됐다.

지적장애 2급인 이씨는 21년간 돼지 농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옹호기관 관계자는 “그가 37세에 돼지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현재 58세”라며 “21년간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했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발견 당시에도 축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임금은 턱없이 낮았다. 2013년까지는 무임금으로 일했고 2014년 이후 매달 30만원 수준의 임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보다 훨씬 낮았다.

그가 지낸 곳은 허름한 컨테이너 박스였다. 경찰과 공공기관 조사에선 냉·난방 시설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추운 겨울에는 전기담요, 여름에는 선풍기에 의존했다.

이씨를 구조한 세종시 옹호기관 관계자는 “피해자가 너무 힘들어 탈출하고 싶은데, 나갈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옹호기관은 그를 보호기관에 위탁하고 관련자를 경찰에 고발했다.

충남 세종=허경구 김지애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