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측 “연락·예고 통보 없이 강제집행해 절차 무시” 주장
정옥진(60·여) 강남향린교회 장로는 “부활절인데 마음이 무겁다”며 교인들을 위해 준비한 삶은 달걀을 간이 테이블 위에 올렸다. 테이블은 철거가 진행 중인 흉물스러운 건물이 가득한 골목길에 놓여 있었다.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강남향린교회 부활절 예배는 이곳에서 열렸다. 교인 40여명은 돗자리를 깔고 앉아 찬송을 불렀다. 4m 정도 높이의 철제 펜스가 교회 입구를 막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서울동부지법 집행과는 지난 30일 오전 9시쯤 이 교회에 대한 강제명도 집행을 단행했다. 교회 측에는 사전에 이를 공지하지 않았다. 재개발조합 측이 “교회에 알리지 말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보냈고 이를 따른 것이다. 강남향린교회는 ‘거여2-1지구 재개발지구’에 포함돼 있다. 교회는 재개발조합과 명도소송 항소심을 진행 중이었지만 오금동에 건물을 샀고 다음 달 초쯤 이사를 갈 계획이었다. 김수산나(31·여) 부목사는 “강제집행 당일까지 법원으로부터 어떤 연락이나 통보도 못 받은 상태였다”며 “강제집행 당시 너무 무기력했다”고 말했다. 현재 교회 내부 집기들은 경기도 하남·구리 등지의 물류센터로 옮겨졌다.
통상 강제집행이 결정되면 법원은 계고장을 발송해 집행 사실을 예고하고 1∼2주 동안의 자진 철거 기간을 두도록 하고 있다. 법원마다 업무지침이 달라 집행 계고를 한두 번 하는 곳도 있지만 이를 생략하는 곳도 있다. 민사집행법규상 계고 절차를 의무화한 규정이 없어 법원마다 업무지침이 다른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법 위반은 아닌 셈이다. 동부지법 관계자는 “채권자 측에서 예고 없이 강제명도 집행을 해달라는 신청이 있었다”며 “원칙에 따라 집행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부지법 집행과 사무실에 걸린 ‘건물명도 집행 흐름도’에는 건물인도 예고 시 이를 1∼2주 전에 통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강제적 집행만 우선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다. 강남향린교회 강제명도 집행 때는 이런 방침이 지켜지지 않았다. 부활절을 코앞에 두고 이뤄진 배려 없는 집행에 교인들이 갈 곳을 잃은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강제집행 시 사전에 계고가 이뤄질 수 있도록 법원과 구청에 강력히 요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교회 관계자들은 오후 3시30분 동부지법 앞에서 합동 규탄 기도회도 열었다. 교인 백상운(24)씨는 “부활절을 맞아 이런 일을 당해 어려움이 있지만 행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부목사는 “교인들이 황망해한다. (집행 당일) 온몸으로 뛰어들어 막으려는 시도조차 못해 무기력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