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미투’ 위축?…대나무숲 “익명 제보 안 받는다”

입력 2018-04-01 17:04
뉴시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위축될 위기에 처했다. 미투는 주로 각종 온라인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폭로된다. 그러나 최근 일부 사이트에서 미투 관련 제보를 게시하지 않겠다는 공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투 바람이 불어닥친 대학가에서는 피해 사례 대부분이 각 대학 페이스북 페이지인 ‘대나무숲’을 통해 드러난다. 대나무숲은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SNS 계정이다. 특정 집단 구성원들끼리 활동을 벌이지만 모든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접하고 댓글로 소통할 수 있다.

한양대학교 대나무숲

최근 한양대학교 대나무숲은 미투 관련 공지를 게시했다. 더 이상의 미투 관련 제보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한양대 대나무숲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지만 대나무숲의 특성상 사실 확인 어렵다”며 “원칙적으로 특정 개인을 저격하거나 유추할 수 있는 제보는 지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SNS 관리자들이 몇몇 (미투) 게시글로 인해 협박과 욕을 듣고 허위 제보가 아니었음에도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는 등 많은 일을 겪었다”는 고충도 전했다.

이에 대나무숲을 이용하던 학생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부 학생들은 대나무숲이 가진 파급력과 익명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달라”고 요구했다. 반면 대나무숲의 결정에 찬성하는 학생들은 “억울한 마녀사냥을 멈출 수 있다” “애꿎은 관리자들이 마음고생 할 필요 없다”는 등의 댓글을 달았다. 이 같은 논쟁에도 한양대 대나무숲 측은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고, 현재 미투 관련 제보를 게시하지 않고 있다.

뉴시스

이 같은 움직임으로 미투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기 어려워진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대학가처럼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지기 쉬운 곳에서는 소통의 창구가 한번 제한되면 나서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로 꼽힌다. 그러나 익명을 등에 업은 거짓 폭로가 무분별해질 수 있어 어느 정도의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전문가들은 대학 당국 자체에서 성폭력에 대해 올바르게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창구들을 점검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신혜정 활동가는 “대학교 자체와 상담기관 등에서 제대로된 성범죄 창구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익명 폭로가 이어지는 것”이라며 “자체적 점검이 근본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문지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