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시장 출마하는 까닭… 적어도 한국당은 이긴다?

입력 2018-04-01 15:27 수정 2018-04-01 15:34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은 1일 기자들과 만나 서울시장 출마선언과 관련해 “오늘 중 일정을 공지하겠다”고 말했다.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2일 또는 3일에는 공식적인 출마선언이 이뤄질 전망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등 지난 대선 후보 중 유일한 출마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대선주자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떨어질 경우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하다. 홍준표 대표와 유승민 공동대표는 당내에서 출마 압력을 받고 있지만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결과에 따른 리스크가 부담스럽기 때문일 테다. 안철수 위원장은 왜 이들과 달리 지방선거에 뛰어드는 것일까. 잘 들여다보면 그리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 서울시장 후보, 아직도 못 찾은 한국당


안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자유한국당은 경쟁해서 싸우고 이겨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유승민 공동대표가 한국당과의 부분적 선거연대 가능성을 언급하자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결코 한국당과 함께할 생각이 없으며 ‘제3의 길’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서울시장 선거는 그에게 ‘한국당과 싸워 이길 기회’가 된다.

한국당은 인재 영입에 난항을 겪고 있다. 영남권 외에는 광역단체장 출마 희망자가 많지 않아 속을 썩고 있는 중이다. 서울시장의 경우 홍정욱 오세훈 이석연 김병준 등 후보로 내세우려 타진한 인사마다 보란 듯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번번이 무산되자 경기지사를 지낸 ‘올드보이’ 김문수 카드를 꺼내들려 한다.

김문수 전 지사가 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할 경우 안철수 위원장에게는 선거에서 공략할 표밭이 한층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김 전 지사는 홍준표 대표에 버금가는 극우 노선으로 선회한 상태다. 최근 내놓은 정치적 발언마다 과거에 표방했던 개혁 보수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후보-안철수 후보-김문수 후보의 3자 대결이 이뤄진다면 안 위원장은 김 전 지사와 확실하게 차별화하는 중도 노선으로 ‘제3의 길’을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대중적 인지도와 젊은층 지지도에서 모두 김 전 지사를 능가하는 터라 지방선거의 하이라이트인 서울시장 승부에서 바른미래당이 한국당을 꺾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김 전 지사가 출마를 고사하더라도 선거를 불과 두 달 여 남겨둔 상황에서 한국당이 파괴력 갖춘 참신한 인물을 내세우기는 쉽지 않다.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가 한국당의 영입 제안을 거부한 이유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홍준표 대표는 지난달 15일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해 “안철수가 나오면 3등이다. 두고 보라. 안철수는 절대 못 나온다. 한참 떨어지는 3등이 될 거여서 정치적으로 자멸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예상과 정반대로 안 위원장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고 홍 대표의 전망을 뒤집어 한국당 후보를 꺾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정치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


◆ 박원순 vs 안철수 ‘대결구도’ 만들어진다면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3파전이다. 박원순 시장과 박영선 우상호 의원이 나섰다. 지지율만 보면 박 시장이 가장 유력하다. 우상호 의원은 ‘안철수 vs 우상호’ 구도를 만들기 위해 벌써 안 위원장을 공격하고 나섰다. 누가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든 서울시장 선거의 큰 그림은 ‘민주당 vs 안철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안 위원장에게는 결코 나쁜 상황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3위로 낙선한 뒤 정치적 입지가 크게 줄어든 터라 어떤 형태로든 이슈의 중심에 서는 걸 마다해선 안 될 상황에 그는 놓여 있다. 특히 ‘박원순 vs 안철수’의 구도가 형성된다면 여론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떠올리게 될 게 분명하다.

당시 안 위원장은 지지율 50%에 육박한 상황에서 지지율 5%에 불과했던 박 시장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면서 ‘안철수 효과’는 극대화됐다. 이 기억이 되살아나는 건 안 위원장의 정치적 행보에 나쁘지 않다. 선거판도 고질적인 네거티브 공방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안 위원장에게 정치적 ‘빚’을 갖고 있는 박 시장으로선 안 위원장을 상대로 네거티브 전략을 펴기 어려워진다. 안 위원장이 이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많이 퇴색한 ‘새 정치’ 이미지를 되살리는 기회도 될 것이다.

◆ 지더라도 강화될 당내 입지… 당권 재장악 청신호


안철수 위원장이 서울시장 경선에 출마해야 한다는 건 바른미래당 내부의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이 줄기차게 얘기해온 것이다. 바른미래당의 지지율 정체를 극복하기 위해 간판급 인사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명분에서 이런 요구가 나왔다. 국민의당 진영에선 거꾸로 유승민 공동대표의 출마를 주문해 왔다.

안 위원장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다면 이 같은 당내 요구에 부응하는 모양새가 된다. 서울시장 선거 불출마를 고수할 경우 지방선거 이후 ‘책임론’이 불거질 때 많은 화살이 안 위원장을 향하게 될 터인데, 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선거에 패한 장수’가 아니라 ‘당을 위해 희생한 장수’로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만약 여당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면 차기 대권을 향해 강력한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 패하더라도 지방선거 이후 당권 재편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바른정당과 합당하며 내려놓았던 당권을 다시 쥐고 정치 전면에 나설 여건이 마련되는 셈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