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미국이 최근 원칙적으로 합의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서명을 북한과의 핵 협상 타결 이후로 연기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혀 발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관철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압력이라는 시각과 함께 FTA 합의를 뒤집고 향후 추가적인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의중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하이오주 리치필드에서 열린 인프라 투자 관련 연설에서 “한국과 훌륭하게 FTA 개정 합의를 봤지만 북한과의 협상이 끝난 뒤로 서명을 미룰 수도 있다”며 “왜냐하면 이건 아주 강력한 카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이 발언에 백악관 참모들도 깜짝 놀랐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한·미 FTA 개정 협상은 전날 양국 정부가 타결을 발표한 사안이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트위터에서 “미국 노동자와 기업들을 위한 위대한 협상이었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불과 하루 만에 이를 대북 협상과 연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최근 중국을 방문했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단계적 비핵화 조치’ 발언을 접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전하는 말을 듣고 김 위원장의 회담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미국이 낭패를 본다면 한국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정부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와 북·미 정상회담 제의를 전달한 만큼 남북 정상회담 등을 통해 비핵화를 관철하기 위한 정지작업을 확실히 하라는 압력일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만족스러운 합의를 끌어내지 못할 경우 한·미 FTA 개정 합의를 번복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에 지렛대로 사용하기 위해 FTA를 보류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고 분석했다.
뒤늦게 라즈 샤 백악관 부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FTA 개정 협상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 완결된 것은 아니다”며 “북한과의 협상을 포함한 모든 사항을 고려해 최종 합의에 서명할 최선의 때를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양국이 발표한 공동선언문이 구속력이 없어 언제든 무산시킬 수 있는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개정 협정문 작성부터 최종 서명, 양국 국회 동의 등 절차가 남았다”고 말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미국이 언제든 협상을 되돌릴 수도 있다”며 “한국은 안보와 통상을 별개라고 얘기하지만 미국은 연계 전략을 쓴다는 걸 알고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번 발언이 나온 오하이오주도 대표적인 중간선거 경합지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서윤경 기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