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 글자 발견-회개] 더 깊이 숙이고 더 낮게 꿇어라

입력 2018-03-30 15:09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로마 가톨릭의 면죄부 발행에 저항해 발표한 ‘95개조 반박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하셨을 때 이는 믿는 자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루터는 삶 전체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회개(悔改)’는 익숙한 주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한다. 회개는 신약 성경의 헬라어 원어로 메타노이아(metanoia)인데, 이는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다, 돌이키다, 마음을 변경하다’란 뜻으로 하나님을 등지고 떠난 길에서 하나님께로 마음의 방향을 전환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보자. 회개와 ‘속죄(贖罪)’는 다르다. 속죄란 하나님 뜻에 순종하지 않은 인간의 죄를 대신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음으로써 인류의 죄를 속량하신 것을 말한다. 대속(代贖)이라고도 한다.

회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평생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삶을 의미한다. 렘브란트의 ‘회개하는 베드로’ 1631년 작품.

‘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의 저자 이정규 시광교회 목사는 책에서 회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지해 평생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삶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는 게 아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는 것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속죄 덕분이다. 진정한 회개는 우리의 죄를 속량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지해 평생토록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삶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표
만일 ‘주여,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나이다. 우리의 회개를 받아주소서’라고 기도한 후에도 이전의 삶을 계속한다면 회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영국의 복음주의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저서 ‘회개’에서 그리스도인에게 회개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를 떼어 버리는 게 낫다고 말한다.

“삶에서 진정한 회심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맛본 사람들은 누구나 회개의 표징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회개 없는 구원은 없다고 서슴지 않고 말씀드립니다. 회개의 필요성이야말로 성경이 논쟁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 중 하나입니다. 성경은 회개를 말할 뿐입니다. 성경은 회개를 자명한 일로 여깁니다. 회개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회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서 기독교의 구원을 맛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면 성경은 용서를 구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 진정한 회개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성추행을 저지르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나는 하나님께서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뿐 아니라 피해를 준 당사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성경의 원리란 것이다. 성경은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마 3: 8, 공동번역)”고 말한다.

진정한 회개는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웃에 지은 죄에 대한 회개를 단순히 말로만 끝내지 않고 배상과 행동으로 드러내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거역함으로 죄를 지으면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죗값을 온전히 갚되 오 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요.(민 5:6~7)”

더 나아가 참된 회개는 이웃사랑의 열매를 맺는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눅 3:8)” 세리 삭개오는 회개하고 예수님께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고 말했다. 그의 회개는 하나님을 향한 것일 뿐 아니라 이웃을 향한 것이다.
독일의 기독교 공동체인 마리아자매회는 ‘회개의 공동체’다. 바실레아 슐링크는 1947년 독일의 국가적 죄를 회개하기 위해 마리아자매회를 설립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회개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회개의 영성은 전후 독일 국민과 사회에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는데 유대인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일구는 사죄의 사신 역할도 훌륭하게 해냈다.

기독교의 용서와 회개
우리가 죄를 범한 이웃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영화 ‘밀양’은 기독교에서의 용서와 회개의 본질을 묻는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여주인공 신애는 자신의 어린 아들이 무참히 살해된 후 기독교인이 되고 그 아들을 죽인 남자를 용서하려 한다. 그 남자를 직접 만나 자신의 용서를 알려주고 기독교의 구원 메시지를 알려주려 하나 그 남자 역시 기독교인이 돼 이미 용서받고 구원받았음을 고백한다. 신애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용서를 신이 이미 한 것에 격분하고 기독교의 신을 거부한다.

신애의 격분은 타당한 것일까. 또 아들이 살해당하고 나의 인생이 파괴되었을 때, 아들을 죽인 살인자는 나의 고통과 상관없이 하나님에 의해 용서되고 구원받을 수 있을까. 만약 살인범이 자신의 살인 행위의 죄악성을 조금이라도 인지한다면 신애에게 자신의 구원 소식을 알리기에 급급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용서를 구하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그가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평생 죄를 뉘우치며 살겠습니다”라고 먼저 용서를 구한 후, 자신이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만났고 자신의 죄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눅 17:3)는 말씀처럼 용서는 회개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두 갈래의 길
유월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 만찬을 베풀며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유다의 배신을 예고하면서 가장 먼저 유다에게 빵 조각을 포도주에 적셔 건넸다. 그리고 ‘어서 가서 네가 하려던 일을 하거라’(요 13:26~27)고 하셨다. 주님은 베드로에게도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와 유다에게 미리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죄책감과 후회에 함몰되지 않고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게 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너희의 모든 연약함을 알고 있단다. 내가 다 이해하고 함께 감당하겠으니 다시 시작하자꾸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가롯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의 부인’ 사이는 확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유다나 베드로 모두 배신 후 회개했지만, 그 정도는 다르다. 베드로는 “심히 통곡(마 26:75)”하였으나 유다는 단지 “뉘우쳤을” 뿐이다(마 27:3).

예수의 정죄 됨을 보고 ‘뉘우친’ 유다는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돌려주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라고 말한다. 그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죄를 깨우쳤다면 그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다. 공동체로 돌아가거나 예수님을 찾으러 가야 했다. 그러나 그는 목숨을 끊을 때까지 스스로 한계에 갇혀 있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주님께 나아갔고 이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다. 회개가 아닌 뉘우침은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세계적인 여성 신학자인 새라 코클라는 ‘십자가-사랑과 배신이 빚어낸 드라마’에서 진정한 비극은 유다가 베드로와 달리 주님께서 베푸시는 흘러넘치는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다의 진정한 비극은 베드로와 달리 저 가능성을 믿지 못했다는 것, 절망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베푸시는 흘러넘치는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도움말> 이정규 시광교회 목사
주님은 부활절을 하루 앞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이미 내가 십자가의 부활로 네 죄를 다 사면하고 너를 의롭다고 선포할 근거를 마련해 놓았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죄에 빠져 살지 말고 내게로 와서 다시 하나님과 은혜로운 교제를 회복하려무나.”



▒회개에 하나 더

회개란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죄성을 깊이 깨닫고 죄로부터 돌이키는 신앙 행위를 말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회개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이다. 어떻게 하면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을까. 이정규 시광교회 목사의 도움말로 ‘회개의 6가지 단계’를 제안한다.

1단계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죄인임을 인정한다.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 생각하며 죄를 하나하나 고백한다.
2단계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의로우심을 묵상한다. 죄를 지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선하게 대해 주셨는지 생각하며 자신의 죄가 얼마나 깊은지 더 깨닫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3단계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용서를 구한다.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담대하고 ‘뻔뻔하게’ 용서를 구한다.
4단계는 단순히 죄에 대한 책임만 면제받는 정도가 아니라 죄의 영향을 받아 일그러진 마음이 회복되기를 간구한다.
5단계는 하나님을 향한 기쁨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한다. 죄악 속에 냉담했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갈망하며 기뻐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한다.
6단계는 공동체의 회복을 간구한다. 회개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자신의 죄 때문에 상처받아 무너진 타인과 공동체를 회복시켜 달라고 간절히 구한다.

이지현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