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분이 주시는 돈은 받고 싶지도 않습니다.”
23일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앱에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손님이 쓴 리뷰는 아니었다. ‘역시 맛있다’는 한줄짜리 평가에 피자집 사장님이 올린 ‘기이한 답글’이었다.
사장님은 몹시 불쾌해보였다. 유심히 살펴보니 손님의 프로필 사진이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우파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에서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할 때 사용하는 그 사진 말이다.
사장님은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담으며 소신을 밝혔다. 그는 “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모르겠지만 누구더라도 그 아이디와 사진, 단단히 잘못됐다”면서 “알았다면 배달 안 갔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돈 안 벌어도 된다. 이런 분이 주시는 돈은 받고 싶지도 않다”고 적었다. 이어 “부모님이, 이웃 어른이 돌아가셨는데 그분 사진 갖고 장난치는거 이해가 가십니까?”라고 반문하면서 “나한테 하면 안되는 일은 남한테도 해선 안된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고 일침을 가했다.
사장님의 답글은 일파만파 퍼졌다. 요즘 말로 ‘사이다’(탄산음료처럼 속이 뻥 뚫리도록 대응했다는 의미의 신조어)라는 것이다.
25일 사장님은 한 차례 글을 게시했다. “주문이 밀려든다”는 것이었다. 사장님의 답글을 알게 된 동네 주민들은 “사장님 마인드에 반해 주문했는데, 심지어 피자도 맛있다”며 극찬했다.
사장님은 당황스럽긴하나, 주문 폭주가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피자에 대한 확고한 철학은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갑작스레 배달 주문이 많아져 주문 지연이라든가 품절 메뉴가 나오고 있다”면서 “그래도 항상 처음처럼 주문 들어오는대로 정량, 정확하게 배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26일에는 “내 모자란 글이 이렇게 큰 영향력이 있을 줄 몰랐다”면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속담과는 달리, 초지일관 하겠다”고 적었다. 이어 “늘 노력해 더 나은 모습으로 찾아뵙겠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