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시간 서울 지하철역 안의 사람들을 관찰해 보라.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사는 풍족함을 느끼게 하는 표정을 보기 어렵다.” 기획재정부 한 관계자는 한국경제의 지표와 체감상 격차를 이렇게 설명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눈앞에 왔다. 그러나 ‘숫자’ 이면에 있는 한국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면 축배를 들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이 28일 발표한 국민계정 잠정치를 보면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9745달러로 전년(2만7681달러) 대비 7.5% 증가했다. 2011년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1인당 GNI는 전체 국민이 1년간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인구로 나눈 수치다. 한은은 올해 3만 달러 돌파는 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2006년 2만 달러 돌파 이후 12년 만에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인구 5000만명 이상이면서 1인당 GNI가 3만 달러를 넘어선 나라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6개국뿐이다. 한은은 1인당 GNI가 3만 달러에 근접한 것은 그만큼 국민의 생활수준이 평균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한은 관계자는 “1인당 GNI 3만 달러 돌파는 선진국으로 가는 지표”라고 말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잠정치도 3.1%로 2014년(3.3%) 이후 3년 만에 3%대로 복귀했다.
그러나 3%와 3만 달러라는 일부 지표만으로 한국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다고 보긴 어렵다. 지난해 1인당 GNI 증가율이 7.5%였지만 원화 기준으로 환산하면 증가율은 4.7%로 줄어든다. 원화강세라는 환율효과가 7%대 증가라는 착시현상을 일으킨 셈이다. 3%대 성장 역시 지난해 하반기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따른 재정효과가 크게 작용했다. 지난해 3분기 1.4% ‘깜짝 성장’ 중 추경 기여도는 0.4% 포인트나 됐다. 추경이 없었다면 지난해 3%대 성장은 어림없었다는 얘기다.
지난해 저축률(36.3%)이 1998년(38.0%)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 역시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다. 불확실한 경기 탓에 가계와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들이 소득이 늘어난 만큼 소비를 늘리지 않았다는 의미다.
앞으로도 문제다. 대내외적으로 해법을 찾기 어려운 문제가 겹겹이 쌓여 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따른 수출 타격 우려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문제가 있다. 정부는 최근 특단의 청년고용 대책을 마련했지만 고용시장에서의 호응도는 높지 않다. 최근 해빙 무드로 대북 리스크가 완화되고 있지만 원화강세로 가격경쟁력이 약화돼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더욱 암울하다. 저출산은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청년 실업난은 이른바 에코세대(1979∼1992년생)가 노동시장에 대거 진입하면서 3∼4년간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노조의 반발 등을 우려해 정부는 경직된 노동시장 등 구조개혁을 제대로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등 신성장 동력으로 성장할 산업으로의 산업개편 역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연세대 경제학부 성태윤 교수는 “대북리스크 완화가 경제 부문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며 “우리 경제에 산적해 있는 다른 문제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우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