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둘러싼 ‘설설설’… 진실은 침대서 자고 있었다

입력 2018-03-29 00:25 수정 2018-03-29 04:29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5월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연설 말미 '의로운' 희생자 이름을 거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동희기자 leedh@kmib.co.kr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4년 가까이 풀리지 않았던 박근혜(66)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이 검찰 수사로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2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관저 침실에서 휴대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 승객 구조의 골든타임이 지난 뒤에야 첫 상황 보고를 받았다.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바다로 침몰하던 때 국민 생명보호 책임의 정점에 있던 국가원수가 관저 침실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오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오전 10시 사건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전달 받은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은 곧바로 박 전 대통령에게 휴대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10시20분쯤 김 전 실장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안봉근 전 청와대 재2부속비서관이 침실 앞에서 수차례 부른 뒤에야 침실 밖으로 나왔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전날 인후염 진료를 받고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안 전 비서관으로부터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한다”는 말을 들은 박 전 대통령은 다시 침실로 들어가 김 전 실장에게 전화해 인명구조 지시를 내렸다. 이 시각이 10시22분. 세월호는 5분 전인 17분쯤 108도로 뒤집어졌고 이후 선내에서 구조된 이들은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사고 당일 오후 5시15분쯤 중대본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당일 행적을 놓고 갖은 의혹이 제기돼 왔지만 검찰 조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은 관저 침실을 벗어나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루머부터 ‘강남 차병원에서 마사지를 받았다’ ‘최순실과 굿판을 벌였다’는 말까지 이런저런 추측만 떠돌았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은 2014년 7월 7일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집무실에 있었느냐’는 박영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질의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그 위치에 대해선 알지 못합니다”라고 답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위치조차 몰랐다는 답변에 정치권과 증권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루머가 퍼졌다.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은 이런 상황을 정리해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 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당시 세월호 7시간 의혹의 중심은 정씨였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것을 기사로 썼다”며 반발했다. 보수단체는 가토 지국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지국장에 대해 법원은 “‘박 전 대통령과 정씨가 긴밀한 남녀관계였다’라는 건 허위사실”이라며 “정씨 휴대전화 발신지 추적 결과 등을 봐도 두 사람이 당시 함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가토 지국장에겐 “대통령이란 ‘공적 사안’에 대해서는 언론 자유가 인정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 밀회설은 처벌받는 이 없이 유야무야 넘어갔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된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특별검사 사무실로 최씨가 소환되고 있다. 2017.01.25. 사진=뉴시스

2017년 하반기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재부상했다. 최씨가 박 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지자 박 전 대통령이 기 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이후 꾸려진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부터 속칭 ‘주사 아줌마’까지 관련자들을 집중 조사했다. 헌법재판소도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 측에게 “7시간 행적을 밝히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특검팀은 청와대의 압수수색 거부 등 장애물에 막혀 수사를 끝내지 못했다. 헌재도 박 전 대통령 측의 부실한 자료 제출로 어려움을 겪었다.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이 28일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 만났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박 전 대통령 행적을 가리던 장막이 걷히고 있다. 박근혜정부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늑장 부실 대응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불법도 불사했다.

검찰 조사 결과 박근혜정부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에게 최초 보고한 시각을 오전 10시로, 박 전 대통령이 첫 지시한 시각을 오전 10시15분으로 조작했다. 모두 구조 골든타임 전이다. 당시 청와대는 구조 골든타임을 선내 학생들의 카톡이 끊긴 오전 10시17분으로 봤다. 검찰은 골든타임을 허비했다는 비난이 고조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박근혜정부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조작극을 벌인 것으로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은 실제 오전 10시19~20분쯤 첫 보고를 받았다. 첫 지시도 오전 10시22분에야 내렸다.

검찰은 조작에 관여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김장수·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등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해외 도피 중인 김규현 전 국가안보실 1차장에 대해선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지명수배 및 기소 중지했고 현역 군인인 신인호 전 위기관리센터장은 군 검찰로 이송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