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유독 추웠습니다. 슬그머니 다가오는 봄기운을 시기하듯 3월에 갑작스러운 눈 소식이 들리기도 했죠. 조금씩 날이 따뜻해지던 26일, 대전 서구에 있는 버스운송사업조합에 손편지가 배달됐습니다. 5만원권 한 장도 함께였습니다.
보낸 이는 20대이던 시절 동생의 청소년용 교통카드를 썼다고 했습니다. 돈을 아끼고 싶어서였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니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계속 불편했던 그는 고민 끝에 빚을 갚기로 했습니다. 편지에 적은 대로 ‘작지만 큰돈’과 함께 진심을 담은 사과를 전한 겁니다.
그는 돈이 의미 있는 곳에 사용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항상 시내버스를 잘 이용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개나리꽃을 닮은 노란색 종이에 적힌 10줄이 채 안 되는 글. 뒤늦게나마 이전의 잘못에 대한 뉘우침을 꾹꾹 눌러 담은 특별한 편지였습니다.
편지를 받은 조합은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요즘에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매번 손님의 나이를 확인할 수 없어 요금을 적게 내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을 기억하고 보낸 돈이라니. 조합은 이 소중한 돈을 차마 수입금에 포함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액자에 넣어 전시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고마운 마음이 큰 데다가 행사가 있을 때마다 기념하고 싶어서입니다. 돈을 적게 내는 손님이 이 일을 계기로 조금 줄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습니다.
버스 기사는 요금 단말기에 카드를 대면 들리는 ‘삐’ 소리로 손님을 구분한다고 합니다. 이 소리가 성인은 한 번, 청소년은 두 번, 초등생은 세 번 납니다. 국가유공자 등 할인 요금 대상은 길게 한 번입니다. 편지를 보낸 이는 버스를 탈 때마다 두 번씩 울렸던 소리에 아마 가슴이 뜨끔 했겠지요. 그의 용기 있는 고백이 참 멋있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