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왜 비밀리에 중국에 갔을까

입력 2018-03-28 05:04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탄 차량(원안)이 27일 오후 중국 베이징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북한 특별열차는 전날 도착해 하루 동안 대기하다 이날 오후 3시쯤 베이징역을 출발해 북한과 연결되는 중국 동북 지역으로 향했다. AP뉴시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비밀리에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2011년 12월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집권한 이후 첫 국외 방문이자, 첫 정상회담이다. 북한의 핵개발로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이어지면서 악화일로로 치닫던 북·중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김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방중 의도에도 관심이 쏠린다.

◇북한과 중국은 그래도 ‘혈맹’이다

북한과 중국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전통적으로 ‘혈맹’ 관계를 맺어왔다. 과거 북핵 문제가 대두된 뒤에도 중국은 북한을 감싸는 모습을 보여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중국은 북한이 핵개발에 매진해 더 이상 북한을 두둔하기 어렵게 되자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노력에 동참했다.

이 때문에 북·중 관계에 소원해졌지만, 그런 와중에도 중국은 북한과 ‘혈맹’임을 꾸준히 밝혀왔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북한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에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하길 원한다”며 북·중의 전통적 우호 관계를 강조했다.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기간에 이뤄진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시 주석이 직접 “중국은 북한과 혈맹”이라 밝히기도 했다.

북한이 이를 모를 리 없고, 급하거나 중요할 때 의지할 곳도 역시 중국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 체제 들어 북·중 관계가 냉랭했지만 대외 관계를 풀고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북한으로선 전통적 우방인 중국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영국 리즈대학의 아이단 포스터 카터 선임연구원도 미국 CNN방송에 나와 “북·중 관계를 고려할 때 김정은은 시진핑 주석을 만나지 않은 채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먼저 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북·미 정상회담 실패의 ‘보험’

북한이 미국과의 정상회담이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했다는 분석도 있다. 자오퉁(趙通) 칭화대-카네기 세계정책센터 연구원은 27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서 “평양(북한)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보험’을 들고 싶어한다”며 “북·미정상회담은 매우 중요하지만 위험부담과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북·미 정상회담은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그 자체로 역사가 될 수 있지만, 실패 시에는 한반도에서의 군사 대립 가능성도 치솟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새 국무장관으로 초강경 대북 대응을 주장해온 마이크 폼페이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명한 것은 북·미정상회담이 실패할 경우 ‘전쟁’ 말고는 다른 옵션이 없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라는 진단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거대한 방패가 돼줄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섰을 수 있다. 자오퉁 연구원은 “회담이 실패한다면 미국은 ‘외교가 실패했다’며 군사옵션을 포함해 보다 강압적 접근법으로 옮겨갈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중국과의 관계가 미국의 군사옵션 개시를 막아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위언장의 방중은 ‘북·미 정상회담이 잘 되지 않더라도 우리에겐 중국이 있다’는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북한으로선 미국의 의중이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미 관계 개선에만 ‘올인’하기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도 북한이 필요하다

중국도 북한과의 접촉으로 실리를 얻는다. 북한이 미국에 쏠리면서 우려됐던 ‘차이나 패싱’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베이징 소식통은 “김 위원장 방중은 중국과 북한의 이해가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이뤄진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중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최근 들어 남북한과 미국 등 3자 구도로 한반도 정세 급변 논의가 이뤄지면서 차이나 패싱이 대두됐다. 중국으로선 북한과의 접촉으로 북·미 대화 과정과 이후 한반도 비핵화 및 북한 안전보장 프로세스 등에서 역할 확대를 노릴 수 있게 됐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