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좋은 엄마를 꿈꾼다.
하지만 끊임없는 자기 검열을 하지 않는다면 ‘엄마의 신화’(엄마의 열정과 노력에 의해 아이의 미래가 만들어진다는 생각)를 꿈꾸는 엄마들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아이를 희생시킬 수도 있다. 아이를 통해 대리 만족을 얻게 되는 것이다. 또 엄마의 신화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의 능력이나 자질, 기질은 고려치 않고 엄마의 목적 의식이 우선 순위에 놓이게 된다는 거다. 엄마 자신의 욕구 충족이 목적이어서 부당한 강요를 아이에게 하게 된다. 이것은 영어 한마디 못하는 사람에게 통역을 요구하는 격이다. 엄마의 신화로 만들어지는 아이들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초등학교 2학년 여학생 J는 아주 고집이 세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사사건건 부모님께도 말대꾸하고 트집을 잡는다. 예를 들어 운동화의 끈이 제대로 안 꿰어 졌다, 자신의 물건이 제자리에 삐뚤어져 있다고 울고 떼를 쓰며 동생을 때린다. 특히 아침 시간이면 매일이 전쟁이다. 머리를 빗고 묶을 때 가리마가 삐뚤어져 있다고 다시 묶어 달라고 수십 번을 반복하니 엄마도 화를 참다 못해 폭발한다. 또 반찬 투정도 심하여 ‘맵다 짜다’며 트집을 잡으니 식사 시간에도 평화롭게 넘어가는 적이 없었다.
J는 놀이를 할 때에도 인형들을 일렬로 세우고 벌을 주거나, 괴물을 감옥에 가두는 놀이를 반복했다. 이는 평소 엄마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J의 엄마는 늘 집안은 깔끔히 정돈되어 있어야 하고 무엇이든 배우면 그룹에서 최고가 되기 바라는 등 욕심이 많았다. 하지만 덜렁거리는 성격의 J는 엄마를 만족 시킬 수가 없어 야단을 자주 맞았다. 그렇게 엄마에게 통제를 받은 J는 이제 역으로 엄마를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 버린 것이다. 작은 일에도 엄마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리거나 생트집을 잡아 자기 맘대로 엄마를 조종하려고 했다.
어려서부터 엄마는 아이가 반듯하고 똑똑하게 자라주길 바랬다. 그래서 행동 하나 하나를 교정해 주고 반듯하게 키우려고 노력했다. 완벽한 아이로 키우려는 엄마의 희망과는 달리 아이는 자꾸 괴팍해지면서 엇나가기 시작했다. 소소한 짜증으로 표출 되었던 욕구 불만이 반항과 공격성으로 발전했다. 이젠 작은 일에도 엄마에게 반항했고 엄마는 그런 올곧지 않은 아이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누가 엄마한테라는 생각에 감정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아 눌러왔던 화가 폭발하곤 했다.
상담을 받으며 J 엄마는 자신이 정해놓은 틀 속에 자식을 가둘 수 없다는 단순한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는 자신과 전혀 다른 기질을 타고 났으며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아이와의 관계가 회복 될 수 없다는 걸 알아 갔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아이에 대한 자신의 욕심을 하나씩 포기해야 하는 또 다른 싸움도 시작했다. 엄마가 아이와의 갈등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아이를 최고로 키워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면서 아이도 차츰 불필요한 반항과 고집이 줄어 갔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