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의 패싱 우려+김정은의 판 키우기… ‘깜짝 방중설’ 배경

입력 2018-03-27 09:52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 CNN 등 외신이 27일 일제히 보도했다.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방중에 사용했던 녹색 특별열차가 베이징역에 정차한 사진과 영상도 인터넷에서 확산되고 있다. 북한 지도자들이 과거 베이징 방문 때 머물렀던 숙소에는 보안요원이 대규모로 배치된 사실도 파악됐다.

‘특별열차’는 북한 최고위층이 이용한다. 이 열차가 움직였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중국에 갔거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김정은을 대신해 타고 갔을 수 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후 처음으로 중국을 깜짝 방문했다”고 확정적인 표현을 사용해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부친이 사망한 2011년 12월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돼 북한 최고 권력자가 됐다. 이후 공식적으로는 북한 영내를 벗어나지 않았다. 방중설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북한 최고 권력자 신분으로 첫 해외 방문에 나선 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먼저 만나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①중국의 요구와 ②북한의 의도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전통적 우방인 북한이 국제무대에 나서는 상황을 중국은 그동안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고 있었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서 북한에 원유 공급을 대폭 줄였고, 교역량도 급격히 감소했다. 중국 입장에선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를 상당부분 사용해버린 상황이다.

북한이 올 들어 ‘속도전’ 하듯 대화에 나서는 상황은 중국이 주문해온 것이기도 하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과 북한이 동시에 적대적 정책과 핵 개발을 멈춰야 한다는 ‘쌍중단’을 강조해 왔다. 그 수단 중 하나로 제재에 동참해 상당한 기여를 했고, 그 결과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이 열리게 됐다. 하지만 그 결과물에 중국의 목소리를 반영할 여지는 많지 않다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과거 6자 회담 방식과 달리 ‘한국이 중재하는 북·미 직접 대화’로 북핵 사태가 해결될 경우 동북아 안보지형은 중국이 원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형성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북한이 미국과 평화체제에 합의하고 경제협력에 나서며 나아가 수교까지 하게 된다면 중국의 대북 지렛대는 한층 더 축소될 게 분명하다. 중국이 앞마당처럼 여긴 곳에서 경쟁 상대인 미국의 입김이 강해지는 상황을 시 주석은 앉아서 지켜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정은의 깜짝 방중이 사실일 경우 이 같은 입장에 놓인 중국의 요구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시 주석이 먼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남으로써 양국 관계를 제재 이전 상황으로 되돌리고 북미 회담에 중국 입김을 반영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김정은 방중설에 대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줄리아 메이슨 국무부 대변인은 취재진의 방중설 질문에 “우리가 여러분에게 문의해야 한다”고 답했고, 백악관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상황 김정은의 전격 방중이 이뤄졌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시 주석에게 허를 찔린 셈이 된다.

올 들어 파격 행보를 이어온 김정은 위원장은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거래’의 판을 한층 더 키우려 했을 수 있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북한이 압박에 굴복해 핵을 내려놓는 모양새가 갖춰지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발탁을 비롯해 외교안보 진용을 강경파로 채웠다.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 북미 대화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대화의 판을 좀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유리한 협상 국면 조성을 위해 북중 관계 개선에 나섰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