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의 만화책 영업사원 크리스티아노 다볼리(45)는 주말이면 도로보수 자재가 든 자루와 삽을 들고 동네를 순찰한다. 도로 군데군데 눈에 띄는 포트홀(움푹 파인 곳)을 ‘응급처치’하기 위해서다. 다볼리는 “때워주세요(Patch me)”라고 적힌 띠를 가슴에 두르고 있다. 다볼리는 포트홀을 발견하면 차량 통행을 멈추고 길을 땜질한다. 불법으로 길을 메우면 벌금을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볼리는 “이대로 놔두면 큰일난다”며 불법 응급처치를 계속하고 있다.
로마가 포트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할지 모른다. 하지만 로마의 길은 타이어를 구멍 내고 당신의 추간판(척추뼈 사이 연골)을 탈출시키며, 어쩌면 차량 한 대를 통째로 집어삼킬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시 당국이 여러 도로의 통행을 막고 속도를 제한해 차들이 거의 기어다니게 만들고 있지만 도로 사정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시민들은 로마의 도로 상황을 풍자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만들어 온라인에 게시하는 식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물웅덩이가 된 포트홀을 두고 버지니아 라지 로마시장이 “4000개의 수영장을 만들었다”고 자랑한다든지, 포트홀에 빠진 라지 시장이 “괜찮아요. 아직 서 있을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내용이다(사진). 한 시민이 마치 연못처럼 변해버린 거대한 포트홀에서 낚싯줄을 드리우는 장면이 목격된 적도 있다. 유명 영화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로마의 망가진 길에서 휠체어가 오도 가도 못하는 장면을 단편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로마 제국은 도로 정비에 공을 들인 것으로 유명하지만, 1700년대에 등장한 자갈 돌바닥이 제대로 보수·관리되지 못하면서 로마의 도로는 최악이 됐다. 시장이 바뀌면서 도로 정비 정책도 일관성 있게 시행되지 못했다.
NYT는 “스쿠터 운전자들은 이미 로마식 슬랄롬(스키에서 S자로 활강해 내려오는 것)에 적응해 있다”면서 “엉망이 된 도로는 넘쳐나는 쓰레기, 구멍 난 수도관과 함께 타락한 로마의 상징이 됐다”고 지적했다.
임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