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못보내… 휴교령을” 유치원 등 ‘미세먼지 결석’ 속출

입력 2018-03-27 07:31
서울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26일 미세먼지 마스크를 쓰고 궁 안을 둘러보고 있다. 윤성호 기자

3살 딸아이를 키우는 설소영(41)씨는 요즘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전화해 “오늘도 결석하겠다”고 통보하는 게 일이다. 그는 지난 23일부터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지 않고 있다. 그가 사는 경기도 의정부는 23일 PM2.5 미세먼지(초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50㎍/㎥를 넘었고 25일 98㎍/㎥까지 뛰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야외활동을 하거나 창문을 열어놓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설씨는 26일 “딸이 비염이 심하고 기관지가 안 좋아서 더 걱정됐다”며 “미세먼지 농도가 떨어질 때까지 집에 데리고 있을 생각”이라고 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사흘 연속 최악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주말인 24일부터 26일까지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기록했다.

27일부터는 미세먼지 환경기준이 국제 수준으로 강화돼 ‘매우나쁨’ 기준이 101㎍/㎥ 이상에서 76㎍/㎥ 이상으로, ‘나쁨’은 51∼100㎍/㎥에서 36∼75㎍/㎥로 바뀐다. 이 때문에 미세먼지 농도가 27일 다소 낮아져도 수도권과 호남 지역은 계속 나쁨 수준으로 유지된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는 이틀 연속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다.

미세먼지 불안감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가장 크다. 서울 종로구의 한 유치원에는 원생 7명이 미세먼지를 이유로 결석했다. 인터넷 맘 카페에도 ‘미세먼지 때문에 결석한다고 했는데 유별나다고 할까 걱정된다’ ‘감기 걸렸다고 핑계 대고 안 보냈다’는 등의 글이 쏟아졌다. 4살 아들을 둔 장정협(43)씨는 “맞벌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어린이집에 보냈다”며 “아이 봐주는 사람만 있었어도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휴교령을 내려 달라’ ‘교실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해 달라’는 등 미세먼지 관련 글이 25일 하루 만에 217건 올라왔다.

서울 종로구청 청소차가 26일 미세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광화문광장 주변 도로에 물을 뿌리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서울시교육청은 시내 초·중·고교에 실외수업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내려 보냈지만 휴교령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고농도 미세먼지 대응 실무매뉴얼’에 따르면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될 경우 교육청이 각 학교·유치원에 임시휴업을 권고하게 돼 있다. 실제 휴업 여부는 학교장이 결정한다. 서울 구로구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그런 권고가 와도 실제로 휴교하기는 어렵다”며 “최소 수업일수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휴교를 하면 그만큼 방학기간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미세먼지 공습이 계속되자 시민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미세먼지 관련 상품 판매량은 사흘 연속 치솟았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24∼25일 미세먼지 마스크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5배 더 늘었다고 밝혔다. 공기청정기도 불티나게 팔린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100만원대 이상의 프리미엄 청정기를 사는 고객도 증가하고 있다”며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4월과 8월에 수요가 늘어난다”고 했다.

미세먼지 마스크는 일부 품절됐다. 회사원 이모(30)씨는 “마스크를 사려고 인터넷 사이트를 이곳저곳 뒤져봤는데 저렴한 건 거의 다 품절이거나 매진이었다”고 토로했다. 대학생 허모(25)씨도 “아침 일찍 집 앞 편의점에 갔는데도 이미 다 팔리고 없었다”며 “친구에게 빌려야 했다”고 했다.

이재연 심희정 기자jaylee@kmib.co.kr, 사진=윤성호 곽경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