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에 대규모 관세 폭탄을 던지고 중국이 보복에 들어가면서 미·중 통상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통상전문가들은 미국이 ‘통상법 301조’를 앞세운 점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전 세계 국가에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면 중국과 같은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장을 날린 것이란 분석이다. 한국이 지적재산권 침해와 관련해 경계해야 할 1순위 산업은 ‘반도체’다.
통상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에 통상법 301조 카드를 꺼내듦에 따라 한국도 안심할 수 없게 됐다고 보고 있다. 당장 미국이 통상법 301조와 지식재산권 분야의 슈퍼 301조로 불리는 ‘스페셜 301조’로 압박할 수 있는 수입품은 반도체다.
KB증권이 최근 내놓은 ‘미 무역규제의 영향’ 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추가적인 수입규제 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한국의 대미 흑자와 미국의 무역적자가 동시에 큰 산업이다. 조건을 맞춰보면 향후 미국이 반도체와 휴대전화 품목을 지재권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미국 기업 ‘비트마이크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용량 저장장치(SSD)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지난해 말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한 상태다. 휴대전화도 과거 갤럭시S2처럼 특허침해 소송에 말려들 가능성이 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5일 “애플의 아웃소싱 기업인 폭스콘이 미국 내 생산공장을 짓게 되면 휴대전화 업체에 대한 보호무역 파고가 높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지식재산권과 관련해 23일(현지시간)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을 제소하기까지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300억∼600억 달러 규모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초강력 경제 제재를 발표한 지 하루 만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중국은 해외 기술 기업에 차별적이고 비우호적인 계약을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WTO 규정을 위반했다”며 “중국의 정책은 라이선스와 기술 관련 계약에서 시장 정책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전 세계 혁신 기업을 해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중국 내 불합리한 투자 환경이 미국 기업의 강제적인 선진기술 이전을 야기하고 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그동안 비난해온 WTO에 중국을 제소한 것은 예상 밖의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경제 분야 측근들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을 키운 주범으로 WTO를 지목해왔다. 미 USTR은 WTO의 무역 지식재산권 협정(TRIPS)에 따라 중국이 해외 지식재산권 보유자를 차별하고 외국 특허보유자의 특허권 보호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이 그동안 통상전쟁을 벌이며 받은 비난을 정당화하기 위해 WTO로 전장을 옮겼다고 보고 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 차장은 “지재권을 침해한 중국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당연한 것임을 WTO의 절차를 통해 정당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中, 무역전쟁서 큰소리 치는 이유는?… 보복카드 수두룩
중국이 미국의 ‘관세 폭탄’ 조치에 대해 역공에 나섰다. 누가 더 크게 상처를 입는지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는 중·미 경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한 쪽을 베면 양쪽이 피를 흘리는 구조인데다 중국이 미국에 심각한 타격을 줄 보복 수단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산 철강과 돈육 등 이미 발표한 품목 외에 앞으로 미국산 대두(콩)와 자동차, 항공기, 반도체, 전자부품에 대한 보복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4일 보도했다.
루지웨이 전 중국 재무부장(장관급)은 “내가 정부에 있다면 가장 먼저 대두에 보복조치를 취하고 그 다음은 자동차와 항공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중국이 수입한 196억 달러(약 21조원)어치 미 농산물 중 대두가 63%를 차지했다. 대두에 대한 보복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표밭인 ‘팜벨트’(농장지대)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또 미국은 지난해 100억 달러(약 11조원)어치의 자동차를 중국에 수출했다. 중국은 미국산 자동차 2위 수입국이다. 특히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제너럴모터스(GM)의 중국 내 판매량은 390만 대에 달했다.
또 항공기 제조업체인 보잉은 지난해 항공기 202대를 중국에 인도했다. 전 세계 인도량의 26%나 된다. 보잉은 2036년까지 중국에 7240대, 1조1000억 달러(약 1200조원)어치 항공기 판매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수출한 반도체와 전자 부품 규모는 68억9000만 달러(약 7조5000억원)어치에 달한다.
중국이 보복조치를 취하면 인텔, 퀄컴, TI, 마이크론 등도 피해가 불가피하다. 또 2016년 미국을 방문한 중국인 300만 명이 현지에서 쓴 돈은 330억 달러(약 36조원)에 이른다. 미국 방문 제한 조치도 가능한 보복 수단이란 얘기다.
반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받는 피해는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중국이 과거 수출과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치중했지만 지금은 내수가 탄탄하고 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체질을 바꿔 무역전쟁에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 비중은 2007년 35%에서 지난해 19%로 낮아졌다. 미국이 6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해도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겨우 0.1% 포인트 하락할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이 중국의 대미 수출비중이 15%에 가까운 가구와 침구, 의류, 신발 등을 타깃으로 삼을 수 있지만 중국 섬유산업 노동자의 비율은 현재 0.5% 수준에 불과해서 영향력은 미미하다.
중국은 또 1조2000억 달러(약 1300조원)어치의 미 국채를 보유한 최대 채권국이다. 무역전쟁이 격화되면 미국 금융시장을 뒤흔들 ‘국채 매각’ 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