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관세 폭탄’ 조치를 내리자 중국도 30억 달러(약 3조2092억원) 규모의 미국산 철강, 돈육 등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키로 하며 정면 대응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악랄한 선례를 남겼다’고 거칠게 비난하며 강력한 보복 조치를 예고했다.
중국 상무부는 23일 미국산 철강과 돈육 등 7개 분야 128개 품목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당 품목의 지난해 중국 수입액은 총 30억 달러다. 상무부는 관세 부과 리스트를 2부문으로 나눠 일정 기간에 중·미 간 무역보상 합의가 안 되면 우선 1부문 품목에 15%의 관세를 부과하고, 향후 중국 내 피해를 평가해 2부문에 2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설명했다.
1부문에는 신선과일, 건과류, 견과류, 와인, 미국산 인삼, 강관 등 120개 품목이 포함됐다. 이 부문 지난해 총 수입액은 9억7700만 달러(약 1조565억원)다. 2부문은 수입액이 19억9200만 달러(약 2조1527억원)로 돈육과 돈육제품, 재활용 알루미늄 등 8개 품목이다. 상무부는 “이번 조치는 미국이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해 생긴 손해를 메우기 위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중국의 경제 침략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은 500억 달러(54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대미 투자도 제한하는 초강경 경제 제재 조치를 시행키로 했다. 또 중국 기업이 기술을 빼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재무부에 중국의 대미 투자 제한과 관리·감독 규정도 신설토록 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1300개의 관세 대상 품목을 선정했으며, 보름 안에 품목 목록을 게시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대중국 경제 제재 조치는 차세대 정보기술(IT), 로봇, 항공우주장비 등 10대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정조준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이 자체 산업 육성을 위해 미국 기업들에 중국에서 장사하려면 지식재산권을 넘기도록 강제하는 행태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이에 중국 상무부는 미국의 ‘관세폭탄’ 조치를 비난하면서 “미국은 낭떠러지 앞에서 말고삐를 당겨야 한다(懸崖勒馬·현애늑마)”고 경고했다. 현애늑마는 위험에 직면하고서야 잘못을 깨닫고 고친다는 의미로 중국 외교에서 상대 국가를 강하게 비판할 때 쓰는 표현이다. 한반도 사드(THAAD) 배치 때 한국을 향해서도 이 말을 썼다. 상무부는 또 “우리는 절대로 무역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참깨를 줍다가 수박을 잃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면서 “미국이 남을 해치려다 스스로 더 큰 손해를 보지 않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무역을 둘러싼 미·중 간 갈등이 남중국해에서 군사 무력시위로 확대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미국 구축함 USS머스틴이 이날 ‘항행의 자유’ 작전을 위해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의 미스치프 암초에 19㎞까지 접근했다고 전했다.
이에 중국 해군은 남중국해 해역에서 실전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중국군 기관지 해방군보가 보도했다. 훈련에는 항모 랴오닝호가 참가할 수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