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미사일을 완성하기 전에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는 것은 적법하다”, “북한이 거짓말하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 그들의 입술은 늘 움직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한 존 볼턴(69)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최근 언론을 통해 드러낸 입장이다. 대북 선제공격을 부추겨온 그가 트럼프 행정부의 세 번째 안보사령탑 자리에 올랐다. 이로써 미 행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대사에 이어 볼턴까지 강경파 3인방이 주도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하고 후임으로 볼턴을 지명했다. 볼턴은 다음 달 9일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볼턴이 “오늘 발표할 줄은 몰랐다”고 할 만큼 전격적인 결정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지난 2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할 때 ‘당선을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참모의 건의를 묵살했다는 언론 보도에 격노하고, 그 배후를 맥매스터로 지목한 것이 갑작스러운 경질 배경이라고 CNN방송은 보도했다.
볼턴은 외교안보 노선과 관련해 ‘초강경파(super-hawk)’로 분류된다. ‘코피(bloody nose) 작전’ 등 제한적인 대북 선제공격 계획을 주도했던 맥매스터보다 더 강경하다. 과거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이란 핵 합의 파기를 주장해 공화당 내에서조차 지나치게 호전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그가 트럼프 행정부 초대 국무장관으로 고려됐으나 상원 인준이 어려울 것 같아 포기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얘기다.
볼턴은 반대 여론을 의식한 듯 지명 후 “과거에 내가 한 말은 다 지나간 일이며 트럼프 대통령 말이 더 중요하다”고 몸을 낮췄다. 또 “대통령에게 국가안보보좌관이 되면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볼턴은 그동안 5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밝혔다. 지난 9일 폭스뉴스에서 “북한이 핵미사일을 완성하기 직전 단계인데 이를 포기할 리 없다”고 주장했다. 또 “만일 북한이 시간벌기로 회담을 이용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회담장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볼턴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의미를 찾는 건 북한에 시간 벌어주기 구실을 주지 않는 것 정도로 보인다. 그는 “북한이 원하는 건 핵미사일 완성에 필요한 시간이다. 6개월이든, 12개월이든 트럼프 대통령이 한 일은 그 시간을 단축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무협상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이 정해지려면 2년이 걸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이런 의도를 간파하고 실무회담을 건너뛰어 정상회담을 곧바로 받아들여 당장 비핵화를 압박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할 경우 미국이 군사옵션을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 볼턴이 기용된 것은 그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이를 경고하려고 폼페이오에 이어 볼턴까지 기용했을 수 있다.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볼턴은 변호사를 거쳐 보수 성향 싱크탱크에서 일했다. 이후 조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을 지내는 등 당시 득세한 ‘네오콘(신 보수주의자)’의 일원으로 불렸다. 그는 당시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또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부시 정부의 대북관을 묻는 질문에 ‘북한의 종말’이라는 책을 들어보이며 “이게 우리 정책”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