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은의 씨네-레마] 허기진 마음, 음식으로 채우다(리틀 포레스트 Little Forest, 2018)

입력 2018-03-23 14:30

젊은 세대에게 다윗이나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식의 조언은 이제 구식이 됐다. 지난해의 ‘욜로’에 이어 올해는 소확행(小確幸·작지만 확실한 행복)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 등의신조어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삶의 태도다. 이런 세태는 최근 미디어 콘텐츠를 보면 분명하게 보인다. 건강한 먹거리와 함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덤으로 볼 수 있는 ‘삼시세끼’ ‘윤식당’ 같은 방송이 대표적 사례다. 최근 개봉한 ‘리틀 포레스트’도 이런 흐름을 반영하는 영화로 읽을 수 있다.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 만화 원작과 영화가 있는 작품을 지금 한국 상황과 시대에 맞는 이야기로 바꿔 만든 영화다. 20대 주인공 혜원(김태리)은 임용시험에 떨어지자 시골 고향집으로 도망치듯 돌아온다. 도착하자마자 한겨울 텃밭 속 배추를 잘라 배추된장국을 끓여 먹으며 “사실 너무 배가 고팠다”고 고백한다. 대도시 바쁜 생활에 쫓기듯 먹던 편의점 도시락으론 아무리 먹어도 결코 채워지지 않은 허기짐이 있었다. 그 허기짐은 단순히 영양학적으로 배를 채우는 것으론 메울 수 없는 배고픔이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신선한 재료에서 나오는 영양과 건강을 취하는 것이고 요리하는 과정에서 오는 정성과 수고의 손맛을 섭취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맛난 음식을 여럿이 나눠 먹는 과정이 주는 소통과 공감은 인생이 주는 큰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작된 도시의 음식은 어린 시절 엄마의 밥상에서 느꼈던 기쁨과 만족감을 주지 못했고 그녀는 오랜 시간 허기를 느껴야 했다.

실패의 쓴잔을 마신 허기진 패배자의 모습으로 돌아온 혜원은 음식을 통해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갖는다. 고향집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텃밭에서 손수 재배한 농작물과 지역에서 나는 제철 작물을 엄마의 특별 레시피로 직접 요리한다. 요리한 음식을 나눠 먹는 그녀의 이웃은 어릴 적 동네 친구 은선과 재하다. 은선은 한 번도 시골을 떠난 적이 없고 대기업에 다녔던 재하는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고향으로 돌아와 농부로 사는 연습 중이다.


혜원은 친구들과 음식으로 소통하고 음식으로 마음을 나눈다. 농사와 요리를 통해 수고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소박하고 정직한 음식을 함께 먹는다. 혜원은 어릴 적 엄마의 음식과 소통 방식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일찍 아버지를 떠나보낸 엄마에게 아버지가 보고 싶은지를 물었지만 엄마는 대답 대신 토마토 이야기를 들려줬다. 혜원은 훗날 그것이 보고 싶다는 의미였음을 알게 된다. 토라진 친구의 마음을 풀어 주기 위해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준 ‘크렘 브륄레(crème brûlée)’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영화는 이들의 삶의 방향을 조심스럽게 조율한다. 성취하는 삶이 왜 필요한지 질문하라고 말한다. ‘리틀 포레스트’는 스펙전쟁과 취업전선에서 스트레스에 지친 젊은 세대를 위한 영화다. 이들은 알바를 하며 학자금과 용돈을 벌고 편의점에서 일하고 그곳 음식을 먹는 이 시대의 평범한 대학생이다.

영화는 무언가를 이루려는 삶의 압박과 무게에서 한 번쯤 벗어나라고 말한다. 그래서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를 ‘루저들의 재기담’이 아니라 세상이 요구하는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행복, 자신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는 모습으로 그린다. 혜원은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 봐야겠다”고 고백한다.


이 시대의 젊은이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해줄 것인가. ‘전도서’의 지혜자는 모든 것은 헛되니 오직 지킬 만한 것을 지키라고 말한다. 성경은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알았도다(전 3:12~13)”라고 말한다. 모두들 먹고 마시는 기쁨과 선을 행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