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한·미 ‘금리역전’… 부동산에 미칠 영향은

입력 2018-03-22 09:01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뉴시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3개월 만에 0.25% 포인트 높였다. 미국 기준금리는 이제 1.5~1.75%로 한국은행 기준금리(1.5%)를 웃돌게 됐다. 한·미 금리는 10년7개월 만에 역전됐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역전’은 한국 시장에 들어와 있는 해외 자본이 다시 빠져나가는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 미국의 저금리를 피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한국을 찾았던 투자자들이 계속 국내 금융시장에 머물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된다.

이런 외화자본 유출이 급격하게 이뤄지는 걸 막기 위해 한국은행이 국내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도 크다. 한동안은 금리역전 상황을 버티겠지만 그 기간은 몇 개월에 불과할 거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해 왔다. 더욱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올해 ‘몇 차례’ 금리인상이 단행될 수 있음을 시사한 상태다. 최대 4차례까지 단계적 인상이 이뤄질 거란 관측도 있다.

미국 금리인상이 한국 금리인상으로 이어지면 국내 시장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전통적인 분석은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었다. 저금리에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본이 두 시장에 몰려 있었는데, 금리가 높아지면 채권 등으로 이탈할 수 있다. 또 금리인상은 주택담보대출 등 대출금리를 높여 유동성 축소를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금리인상=부동산 악재’란 등식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란 시각도 있다. 금리를 인상한다는 건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여도 좋을 만큼 경기가 살아났다는 뜻이다. 연준은 이날 금리를 인상하며 내놓은 올해 경제 전망에서 낙관적 시각을 한층 강화했다. 금리인상은 곧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뜻하기에 활황세로 접어드는 실물경제가 오히려 부동산 경기에 긍정적 영향을 줄 거란 분석도 나온다.

◆ 연준, 강화되는 ‘매파’ 색채… 2020년 3.25~3.50% 될 수도

연준은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치고 “연금기금 금리를 현행 1.25~1.50%에서 1.50~1.75%로 0.25%포인트 인상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연금기금 금리는 미국의 기준금리에 해당한다. 연준은 찬성 8표 만장일치로 금리인상을 결정했다.

지난해 세 차례를 금리를 올렸던 연준은 올 들어 첫 분기부터 금리인상에 나섰다. ‘제로금리’였던 2015년 12월 이후로는 6번째 인상이다. 그동안 모두 0.25% 포인트씩 금리를 조정하는 일명 ‘베이비스텝'을 유지해 2년여 동안 0.00~0.25%에서 1.50~1.75%로 1.5% 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연준은 “올해 3차례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며 올해 말 기준금리 전망치를 2.1%로 유지했다.

미국의 경제 성장에 대한 자신감이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졌다. 연준은 성명에서 “미국 경기 완만하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몇 달간 일자리가 늘었다”고 밝혔다. 향후 긴축 행보에 대해서는 매파(통화긴축 선호) 성향을 강화하면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레토릭'을 내놨다. 단기적으로는 금리역전을 통한 한국의 자본유출 우려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지만, 이번 레토릭에서 보듯 연준의 매파 색채가 강화될 조짐을 보여 단언키 어려운 상황이다.

연준 지도부는 올해 기준금리를 3차례 인상하겠다는 기존 기조를 유지했지만, 내부적으로는 4차례 인상론의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 내년 금리 인상 횟수를 2차례에서 3차례로 상향 조정했고, 2020년에는 두 차례 인상을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7차례 금리 인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0.25% 포인트씩 인상한다고 가정하면, 미국 기준금리는 3.25~3.50%까지 높아지게 된다.


◆ “한국 주담대 금리, 올 연말 4.6%까지 오를 수도”

미국 금리인상으로 한국도 금리인상 압박을 받게 됐다. 한은은 살인적인 가계부채와 경기회복 등을 고려해 당장 금리인상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계속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미 금리역전으로 자본유출 가능성이 커지면 외국자본 의존도가 큰 한국경제에 커다란 부담이 된다.

이주열 한국은행총재는 2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경제전망도 보고 미국 금리 상승 추세도 보면 우리도 인상 방향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부동산 투자자들, 특히 대출을 통해 갭투자에 나섰던 이들은 불안한 상황이 됐다. 무리하게 돈을 빌려 투자에 나선 사람들은 금리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저금리의 산물이었던 갭투자 방식이 효과를 나타내기는커녕 높아지는 이자 상환 부담에 거꾸로 역풍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미국 금리인상이 국내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부동산 시장에 ‘나비효과’가 발생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국내 부동산은 넘치는 유동성에 몇 년간 상승 장세를 유지해 왔다. 여윳돈이 없는 이들도 저금리 대출로 투자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부동산 폭등의 한 축이었던 이런 수요는 대출금리가 높아지면 크게 꺾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주택산업연구원은 ‘미국 기준금리 변화가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올 12월 국내 주택담보대출금리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미국 3년 만기 국채금리변동에 따라 최대 4.59%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평균 주담대 금리가 이렇게 상승하면 저신용가구가 부담해야 하는 금리는 9.24%에 달해 주택시장 부담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우려했다.

◆ “부동산 좌우하는 건 유동성 아닌 실물경기”


서서히 속도를 높이고 있는 미국 기준금리의 인상은 실물경기에 대한 자신감을 반영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이 불확실성을 높였지만 기본적으로 소비·투자·고용 지표가 모두 양호하다. 감세 조치와 인프라 투자 계획도 성장세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경제는 오랜 불황을 끊고 확실히 회복돼 왔으며 계속 좋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준의 금리인상 드라이브는 이를 증명하는 가장 명확한 신호다. 경제 전문가 중에는 ‘미국 금리인상→한국 금리인상→유동성 축소→부동산 위축’의 시나리오 대신 ‘미국 금리인상=미국 경기호황→한국 수출 확대→한국 내수 진작→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예측하는 이들도 있다.

과거 국내 부동산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해외에서 닥쳐온 위기 상황에서였다.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발 재정위기 당시 한국 부동산 경기는 극심한 침체에 빠졌다. 5년째 계속되고 있는 부동산 상승장은 2011년의 위기가 해소된 2013년부터 시작된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 후반기에 미국 경제가 회복 사이클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경제 무대에 온기가 퍼져 나갔다. 이렇다 할 외부 변수가 없었던 지난 5년간 부동산은 한국 경제의 불안한 저성장 와중에도 상승 행진을 이어왔다. 이제 미국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 및 성장세에 진입한 이상 돌발 상황이 아니라면 과거의 ‘해외발 위기’ 국면이 벌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따라서 미국 금리인상을 ‘유동성’이 아닌 ‘경기’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나름 설득력을 갖고 있다. 더욱이 남북관계가 급속히 개선되고 북핵 리스크도 제거될 가능성이 커진 터라 전반적인 경제 상황은 낙관론에 무게가 실린다. 부동산 역시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은 미국 금리인상의 이면을 비춰주고 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